학력은 항문의 능력이요 학문은 항문의 크기가 아닐까
학력은 배출하는 능력? 학문은 배출의 크기?
학력은 됨됨이의 그릇? 학문은 됨됨이의 크기?
학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력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학력은 종이 위에 적어내려가는 이력서에 불과하다.
세상은 배움의 경력으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단지 배움의 경력은 세상을 다스리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누구나 배움의 과정이 다를 수 있다.
독학으로 배운 사람, 정규 학교를 통해서 배운 사람, 가족에 의해서 배운 사람
어디서 배웠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의 값어치 있는 것은 아니다.
정규과정은 어느 학교를 다니든지 배움의 내용이 비슷하다.
정규과정만이 이 사회를 이끌 절대의 가치기준도 아니다.
어디서 배우든지 배움의 내용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문명의 발전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배움의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시대인에 있어서 배움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홈스쿨을 하든 정규학교를 다니든 형식상의 차이를 빼면 배우는 내용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배우는 내용이 비슷하기에 배움의 형식을 그토록 따지는 걸까.
배우는 형식이 그 사람의 인격을 완성시키지는 않는다.
배우는 곳과 배우는 형식을 너무나도 따진다.
학력위조사건들은 모두 배우는 곳과 형식을 너무 중요시하는 사회풍조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독학으로 깨달음을 얻어 '배워서 남주는' 사람들은 세상에 전혀 값어치 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배움의 과정과 배움의 형식이 아니라 배웠던 것들을 어떻게 세상에 펼치고 있는가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선별기준을 배웠던 곳과 배웠던 과정으로 한정한다면 가르치는 기준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의 기준으로 배워서 남주는 과정의 평가로 삼아야 한다. 배움의 장소와 형식의 기준을 없애야 한다. 배움의 장소와 형식이 중요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극히 좁쌀한톨의 참고자료일 뿐이다.
사람들이 본받고 배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세상을 향해 어떻게 펼치는가에 달려 있다.
'아무리 어려도 배울 것이 있고, 누구에게나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
바로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세상을 향해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단지 학력란에 빼곡히 들어찬 배우는 장소의 나열이 그 사람의 인격을 표현해주는 것은 아니다.
학력이 아니라 존경받는 사람들이 진정 존경받는 세상, 존경받는 사람이 가르치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공공성의 실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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