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학벌없는사회란 단체에서 사무처장직을 맡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수인사를 하면, 내 소개를 듣고 난 상대방이 바로 학벌 관련한 자신의 억울함이나 들은 바를 전해줄 때가 있다.
어느 사진기자일을 하시는 분은 도대체 사진 찍는 일이랑, 학벌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분명히 자신이 사진을 더 잘 찍거나, 혹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좋은 학벌의 사람들이 좋은 자리로 간다고 한다. 사진계에도 그런 일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사교육 교재 만드는 분을 만났었는데, 그 분은 자신이 쓴 책에 자신이 이름을 못 걸었다고 했다. 보다 좋은 학벌의 사람이 저자로 등록되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입시성적이 이렇게 사람을 가르니 이 사회에 입시경쟁이 사라질 리 없다.
- 데모를 해도 명문대 나와야 한 자리 한다? -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주인공이 아래와 같이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뭡니까? 전인교육, 인성교육 아닙니까!”
이렇게 교육해서 입시성적 떨어지면 나중에 그 아이의 삶을 누가 책임지나? 인격이 좋다고 대접받는 나라가 아니다.
<연탄길>의 이철환은 유명 강사 출신이다. 그가 어떤 교재를 녹음했을 때, 처음엔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대학 출신임을 밝히고 나자 바로 대접이 달라졌고, 결국 교재작업에서 밀려났다고 한다. 이철환 씨의 인성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한 학교의 목표는 인성교육일 수가 없게 된다. 아이들을 장차 무시당하고 천대당하는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 학교가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우리 학교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입시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입시교육을 하면 아이들의 영혼이 피폐해지지만 어쨌든 나중에 사람대접을 받게 할 수 있고, 입시교육을 안 하면 당장 아이들이 정상적인 영혼의 사람이 되지만 나중에 평생 사람대접 못 받게 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최악이냐 차악이냐를 강요당하며 오늘도 학교라는 이름의 수용소로 향한다.
한 사회활동가는 자신이 어렸을 때 한 선택을 후회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한국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모르고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가까운 지방대에 갔다고 한다. 한국사회를 수십여 년 겪어보니 이제는 “아, 그때 내가 잘못 했구나. 어떻게 해서라도 서울 지역 명문대를 갔어야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다못해 똑같은 데모를 해도 서울 지역 명문대를 나와야만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 보좌관, 각종 위원회, 정당 등의 자리들도 모두 서울 지역 명문대 연줄이 있어야 쉽게 차고 들어갈 수 있다.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이나 명문대 리그인 것은 똑 같다. 삼류대, 지방대 나온 사람들은 이등국민이다. 실업계 고졸은 아무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 시민권 없는 유령 국민이다.
똑같은 대학 안에서 캠퍼스가 다르다고 대학생들끼리 차별한다. 언젠가는 모 명문대 지방 캠퍼스 학생이 캠퍼스를 빼고 그냥 어느 대학 학생이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가 인터넷 공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옛날엔 고려대 조치원 분교를 동토의 땅 ‘조베리아’라고 했다던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오늘 내가 아는 후배가 나에게 친구와 술을 먹게 된 사연을 말해줬다. 친구가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관이 출신 대학을 보더니 ‘여기 나왔어요?’라고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투가 너무나 모멸적이어서 그 울화를 술로 풀었다는 얘기다.
-실수로 건드린 학벌 문제, 친구야 미안해-
나도 옛날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학교같은 덴 신경 끄고 살았기 때문에 학교 순위에 매우 둔감했다. 또, 난 그냥 나일 뿐이지, 어디에 소속된 나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반창회를 나갔다. 난 원래부터 대학 같은데 신경도 안 썼고, 어차피 대학도 못 간 상태였기 때문에(입시 날 오전에 자다 나와서 장국영 나오는 영화를 봤다), 그 자리에서는 가장 실패자인 셈이니까 얘기에 거리낄 것도 없어서 아무렇게나 얘기했다.
“최근에 어느 대학에 갔는데 거기가 학교냐? 무슨 학교가 그래?“
무슨 뜻이었냐면 당시까지만 해도 난 대학 앞에는 다 유흥가가 있는 줄 알았었다. 어느 대학에 갔더니 유흥가를 가려면 약간 나와야 했다. 난 그 생각을 하며 말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그 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하다가 나중엔 정말 잘못했다 싶어서 사과를 했지만 그 아이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대사를 다른 사람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대상은 이화여대였다. 그 동네에 갔더니 옷 가게가 너무 많아 짜증이 났던 게 이유였다. 그 말을 들은 이화여대생은 ‘왠 잡소리냐’하면서 날 쳐다보기만 했지, 울지 않았다.
나이를 좀 더 먹은 후에 대학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후배의 또 다른 친구는 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해놓고도 휴학하고 다시 입시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 아이는 미팅에 가서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말 못하고 다른 학교를 댔다고 한다. ‘이 학교 다니기 쪽 팔린다’, ‘경영학과도 명문대 경영학과만 대접 받는다’ 이런 말들을 하더니 결국 휴학계를 냈다는 것이다. 내가 울렸던 그 친구도 나중에 이런 경로를 밟았는지 모르겠다. 그 후 소식이 끊겨 알 길이 없다.
학벌 간판을 기준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주눅 들고, 사람이 사람을 멸시하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신정아 씨의 간판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주눅 들게 했으면 그 빛에 눈이 부셔 검증할 생각도 못했겠나. 그 빛나는 간판을 자식에게 안겨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멸시받는 부모들이 오늘도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있을까.
어쩌면 옛날에 내가 울린 그 친구는 지금 자기 자식을 울리지 않기 위해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모든 국민이 이 따라잡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따라잡기 게임‘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내가 울린 친구만은 혹시 지금 따라잡기 중이라면, 부디 따라잡기에 성공하기를...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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