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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해암정과 추암의 매력에 반해버리다.

by 풍뢰(류재열) 2007. 7. 6.

 

빗길에 떠나는 여정은 늘 무엇인가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래서인가 그저 혼자서 훌쩍 길을 떠날 때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늘 가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느 때쯤은 그것이 실망으로 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큰 기대로 끌어올려져 승화가 되기도 한다. 비는 사람을 우울하게도 하지만, 그 폭우를 이기고 무엇인가를 해낸다는 충족감이 가끔은 가슴을 활짝 열어 묵은 것들을 다 토해버리게도 한다. 그래서 빗속의 여행은 항상 많은 것들을 보따리에 담게 만든다.

 

해암정의 모습 


몇 번인가 찾아간 촛대바위라는 추암은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맞이하는 방법이 다르다. 어느 때는 고즈넉하게 홀로 서 있는 선비 같은 모습인가 하면, 어느 때는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간 서방을 기다리는 아낙의 고개 떨군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추암은 늘 기다리는 그런 모습으로 날 맞이한다. 추암을 보러 가면 항상 만나게 되는 해암정. 갈 때마다 문창호지가 찢겨져 앙상한 창살이 들어나 있지만 결코 추하게 보이지가 않는 것은, 아마 해암정 뒤에 있는 기암괴석과 그 바위를 치며 철썩이는 파도소리 때문인가 보다.   

 

 

 

해암정 뒤로 보이는 기암괴석들 


동해시 북평동 추암해수욕장 안으로 들어가면 버젓이 선비의 가부좌처럼 앉아있는 해암정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해암정은 고려 공민왕 10년(1361)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가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심동로의 자는 한(漢)이요, 호는 신제(信齊)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한림원사(翰林院使) 등을 역임하고, 고려 말의 혼란한 국정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권세가의 비위를 거슬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이때 왕이 이를 만류하다가 동로(東老:노인이 동쪽으로 간다는 뜻)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낙향한 후에는 후학의 양성과  풍월로 세월을 보냈다. 왕은 다시 그를 진주군(眞珠君)으로 봉하고, 삼척부를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였다.


지금의 해암정(海岩亭)은 본래 건물이 소실된 후, 조선 중종 25년(1530)에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이 중건하고, 정조 18년(1794) 다시 중수한 것이다. 건물은 낮은 1단의 석축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정자 형식이다. 4면 모두 기둥만 있고 벽면은 없다. 뒤로 지붕보다 조금 높은 바위산이 있어  운치를 더해 주며, 이곳에서 보는 일출 광경은 장관이라 한다. 나는 동해의 정자 중 당연 해암정을 최고의 정자로 친다. 화려하지도 않고, 웅장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어느 정자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과 동회된 모습으로, 그저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있는 해암정은 나타나보이지가 않는다. 그곳에 있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해암정 뒤를 보면 기암괴석이 저마다 모양새를 자랑하고 있지만, 해암정은 그도 못 본 체 그저 무심히 떠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능파대, 추암해수욕장은 남한선성에서 정동 방향이라고 한다. 


해암정 곁으로 능파대를 오르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오르다가 보면 눈앞에 기다란 촛대 같은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추암, 그 모습이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서방을 기다리는 각시가, 기다림에 지쳐 고개 떨군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곳은 항상 기다림 속에 있는 곳인가 보다. 해암정은 이미 떠나버린 주인을, 추암은 고기잡이를 떠난 서방을, 그리고 이곳 능파대는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려고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가보다. 기다림이란 참 길고 지루한 것이 아닐까? 올 여름 피서객들을 기다리는 추암해수욕장의 사람들도 또 하나 기다림을 더하고 있다.

 


추암을 촬영하는데 비는 그치지를 않는다. 빗속에 외롭게 서 있는 추암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담을 욕심에 돌 끝까지 조심스레 나가본다. 자칫 한발만 헛디디면 바다 속으로 떨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조금이라도 더 멋진 사진 한 장을 찍어보려고 하지만, 쏟아지는 빗줄기는 작은 캠의 렌즈에 사정없이 부딪힌다. 그래도, ‘조금만 더’를 속으로 연발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에 이런 낭패가 있나. 발이 미끄러진다. 그만 물속으로. 다행히 깊은 곳은 아니다. 어차피 비에 다 젖었으니 누가 알기나 할 것인가?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혼자 키득거린다. 참 못 말리는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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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을 돌아 해수욕장으로 나오니,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모여 파도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물속은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바다를 찾게 만든다. 백사장으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바닷물도 지쳤는지 조금 쉬어 가려나보다. 기다림이 있는 곳 추암해수욕장, 그 기다림을 뒤로하고 떠나는 길손에게 추암은 또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눈인사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린다고.           

 

비가 오는데도 해수욕장을 찾아 노는 아이들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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