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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신 관동팔정(關東八亭)의 별곡(別曲)을 노래하다.

by 풍뢰(류재열) 2007. 7. 6.

 

관동팔경이라 했던가? 강원도를 중심으로 한 동해안 여덟 명승지를 일컬음이다. 강원도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경상북도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관동팔경이라 명했다.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를 넣기도 하는 이 관동팔경은 흰 모래사장과 우거진 소나무 숲,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조망, 해돋이 풍경 등 바다와 호수 및 산의 경관이 잘 어우러진 빼어난 경승지를 말한다. 특히 고려 말 안축이 지은 『관동별곡』에서는 총석정과 삼일포, 낙산사 등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조선 선조 때 정철이 지은『관동별곡』에서는 관동팔경과 금강산 일대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난 옛 관동팔경 대신 요즈음의 관동팔정(關東八亭)을 노래하고 싶다. 동해안의 가장 아름다운 정자 8곳을 나름대로 정했다. 관동팔경 못지않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 고성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의상대와 하조대, 강릉의 경포대, 동해의 해암정과 추암, 그리고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월송정과 경주 감포의 이견정을 난 이 시대 관동팔정이라 말하고 싶다.


강원도 고성을 출발해 해안을 끼고 부산까지 내달리는 해안도로 국도 7호선. 맑은 동해의 물이 금방이라도 나그네의 발목을 부둥켜안을 것만 같은 길이다. 햇볕에 반짝이는 모래사장과 해안을 끼고 죽 늘어선 노송 숲, 그래서 7번 국도는 언제나 많은 여행객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길이다. 고성을 출발한다.

 

 

청간정. 들어가는 입구에는 오래 묵은 노송들 몇 그루가 청간정을 지키고 있다. 청간정 주변에는 예전 화살을 만들었다는 산죽 숲이 우거져 있다. 한 여름에도 정자에 오르면 뼈 속까지 시원한 곳이다. 앞으로 펼쳐진 바위 돌들은 납작하니 엎드려 누구라도 기다리는 모습이다. 철 놓친 철새 몇 마리가 물속을 노리고 있다가 고개를 물속에 파묻는다. 부리에 걸려 파득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가 오늘 만찬인가 보다.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물,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가 있어, 갈 곳을 잊은 것은 아닐까? 정자에 걸린 많은 게판들이 청간정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어, 너도 나도 이곳을 찾아든 것인지. 세월은 그리 흘렀지만 산천은 의구하다는 시구 한마디 떠올리고 길을 나선다.

 

 

낙산사 의상대. 지금은 화마가 할퀴고 간 상처로 인해 온통 주변이 소란하지만 아주 오랜 옛날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참선을 하면서 중생을 구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누구라 이곳에서 세상을 바라다 볼 마음이 생겼을 것인가? 그저 한 마리 바닷물고기가 되어 저 맑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유영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철썩이는 물살이 할퀴고 간 암벽에는 그리도 모진 세월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다. 의상대에 올라 눈을 감아본다. 부질없는 세상의 욕심이 한꺼번에 어디론가 빠져나가듯 그리 맑은 바람 한 점 스치고 지나가 멀리 동해로 스며든다.     

 

 

하조대. 언제나 들려보아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하조대 앞을 바라다보면 동해에서 불끈 솟아오른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동해를 바라다보며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듯 서 있다. 아마 동해를 좀 더 멀리 바라다보고 싶은 바위 하나, 그렇게 솟아올라 절경을 이루었나 보다. 주변 암벽에 부딪는 파도들은 언제나 신선의 노래라도 지어내듯 철석임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낸다. 누구라 이 위에 올라 멀리 동해를 바라다보면서 시 한 구절 읊조리지 않았을꼬? 산절로 수절로, 그리고 그 절로된 마음을 따라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 바위 위 나무 한그루가 되었나보다.

 

 

경포, 바닷물을 열어 물길을 만들고 맑은 달을 임의 눈에 그린다는 곳. 하늘에도 달이요, 경포호에도 달이요, 술잔에도 달인데 또 하나 임의 눈에 달이 있어 좋은 곳. 경포대는 그런 곳 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아 아름다운 밀어를 만들어 내었나 보다. 임은 어디로 가고 홀로 앉아 한잔 술에 취해, 세상을 바라다보노라니 그 잔잔한 호수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렀는가 보다. 누구라 세상사 시름만을 이야기 할 것인가? 경포호는 오늘도 말없이 달하나 품고 있건만, 세상 사람들이 그를 못보고 남의 탓만 하다니. 오늘도 말없이 달을 그리는 마음, 경포대에 올라 풀어나 보련다.

 

 

바닷길을 달리다가 내륙으로 들어가 만나는 죽서루, 바위를 기둥삼아 정자 하나 지어놓고, 강물에 낚시를 드리운 체 세월이야 가는 듯 마는 듯. 그렇게 세월만 낚아내고 있을 것인가? 정자 곁 대나무는 소슬바람에 나부끼며 바스락거리는데 정자 위에 올라앉은 나그네의 마음은, 그저 멀리 떠난 임 그리며 한없는 눈물을 짓노니. 세월이야 살 같다고 하지만 금방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감추려고, 밀짚모자 깊이 눌러쓰고 소리쳐 시 한수 읊었음이라. 누군들 이곳에서 소리 내어 한수 읊고, 글 한자 떡하니 적어 벽에 걸어 놓고 싶지 않으리. 그래서 죽서루 또한 팔정(八亭)의 하나인 것을.

 

 

추암이라 하는 불끈 솟은 바위 하나. 가만히 바라다보면 먼 바다로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한없이 눈물짓는 아낙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곳은 기다리다 목이 멘 사람들이 오르는 곳인가? 그런 기다림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낮게 솟아오른  많고 많은 바위산. 그 산을 뒤로하고 그저 말없이 앉아있는 해암정. 바닷길 열며 기다림에 지친 나그네를 쉬어가라고 그 곳에 앉아있는 것인지. 지아비 기다리며 눈물짓던 여인, 하마 탈진이라도 할까 두려워 쉴 곳 마련하느라 그곳에 있는 것인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기다림에 지친 해암정은 그저 그렇게 바위 산 뒤로하고 조용히 앉아있다.

 

 

관동제일이라 누구라 이름 하였던가. 달을 바라다보다 차마 눈물짓는 모습 남이 볼까 두려워 솔밭사이로 숨어들었다. 능선 위 오도카니 올라서 먼 바다를 향해 이름 석자 소리쳐 부르다가 잠이 들었다. 행여 꿈속에서나마 임을 볼까 기다리는 마음이 그리 사무친 곳 월송정. 온갖 수난 속에서도 오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오늘 난 그곳을 찾는다. 우거진 숲속에서는 코끝을 간질이는 향내가 나고, 후드득이며 솔가지 떨어뜨리고 날아간 새 한 마리는 돌아오지 못하는가?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을 올라 엄지손 추켜세우고 자랑하던 곳. 월송정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오가는 나그네를 맞아들인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차라리 동해용이 되어버린 선인이 그리워, 날마다 그곳 언덕위에 서서 멀리 바위 하나 동해물에 둥실 떠올라 생긴 수중릉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수중릉 위로 행여 손짓이라도 하는 선인이 있을까 눈 비비며 기다리던 곳 이견정. 바닷길을 달려 휑하니 이곳에 당도하니 바람 또한 뒤늦게 따라와 뒷덜미를 간질인다. 천리인들 가지 못하랴. 만리인들 가지 못하랴. 동해바다 한가운데 누워 어디라도 내 자손을 돌보는 곳이라면 한달음에 달려간다는 고귀한 뜻이 있어, 이곳 이견정에 올라 그리도 바라다만 보는 것을. 오호 통재라. 그 임은 어디로 가고,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왜구의 뱃고동이 동해를 휘젓는고. 다시 용이 되어 이 바다 지키시라고 이견정에 올라 고개를 숙인다.


(註)길고 긴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정자들이 날 반기고 있어,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 관동팔정을 노래하면서 난 또 다른 남해이야길 준비한다.

출처 : 누리의 취재노트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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