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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영월기행(寧越紀行) /김동환

by 풍뢰(류재열) 2007. 6. 29.

    영월기행(寧越紀行)

    김동환(金東煥)

    百(백)도 더 넘는 山(산)이언만, 어여쁜 蛾眉山(아미산) 하나 없다

    험하고 못난 산뿐으로 寧越嶺(영월령) 이뤘는데

    녹잖은 얼음짱 위를 또 丈雪(장설)은 덮이더라

    분명 다 넘었는데 또 山(산)이요, 다 건넜는데 또 물이라

    가도가도 初入(초입)이니 가마귀도 길 멀어 운다

    이 사이를 묶여가는 이 신세, 살아 回路(회로) 있을까

    쌓인 눈 덮치는 눈 바위되어 금시에 길 막는데

    이 사이를 오르는 車輪(차륜), 열자 길에 열두번도 더쉰다

    벌써 서릿바람에 철갑찬 내 수족은 제살 아닐러라

    새벽에 堤川(제천) 떠난 몸이 夕陽(석양)에사 마지막 재 넘다

    三百里(삼백리) 다간 松林(송림) 속 羊馬石(양마석) 놓인 저 무덤이

    恨(한)많은 莊陵(장릉)이었구려, 捕吏(포리) 눈 속여 얼른 절합네다

    눈보라 밤낮 쳐서 벗은 무덤 더 벗기는데

    帝王(제왕)의 꿈 흩어진 채 朔風(삭풍) 불어 五百年(오백년)

    小臣(소신)도 꿈 흩어져 이제 묶여 가옵네다

    묶이운 이몸 위에 씌워지는 罪(죄)와 罰(벌)은

    혹독도 하온지고, 아픔의 끝이라

    寧越(영월)의 「地獄門(지옥문)」은 영원히 닫힐 줄 모르던고

    요행 풀린 몸이 나는듯 子規樓(자규루) 달아오르니

    낡은 우물가 기울어진 기둥에 幼君(유군) 기대어

    「햄릿」같이 몇번 苦悶(고민)하고 우셨나

    朝鮮(조선) 五百年(오백년) 사이, 地上(지상)에 일 많이 하신 분 누구인가

    慶會樓(경회루) 지은 분, 한글 내신 분, 六鎭(육진) 여신 분 모두 크다

    淸冷浦(청냉포) 이 강변서 풀옷 입다 가신 분 또한 크다 하옵네

    그 어른은 國土(국토) 넓었으나 한고을도 차지하길 원치 않았고

    王冠(왕관)보다 꽃冠(관)을 御衣(어의)보다 풀옷이 좋아서

    王宮(왕궁) 빠져나와 예와 사슴 벗하며 사셨다 보옵네

    그 어른은 갑옷, 창칼, 勳牌(훈패) 이런 것들 싫어서

    大明(대명), 大唐(대당)과 四色(사색) 獄事(옥사)와 侏儒(주유) 爭臣(쟁신)이 싫어서

    예와 땅 일궈 모밀 갈아 편안히 계시다 가셨나 보옵네

    또 그 어른은 이 골짝 여윈 山(산) 회색하늘이 싫어지면

    그때는 퉁소나 한자루 옆에 끼시고

    斷髮嶺(단발령) 넘어 楡岾寺(유점사)나 찾아 餘生(여생) 보내시려 하셨을걸

    彰節書院(창절서원)은 死六臣(사육신), 生六臣(생육신) 모신 곳이라

    열쇠 잠겨 분향 한번 못드리고 가오나

    遯世(둔세) 自靖(자정)하신 그 뜻, 하늘 다음에 내사 안다 하옵네

    기둥에 써 붙인 「死固當然地」「生猶不愧天」(사고당연지 생유불괴천) 이란 글

    살되 하늘이 許(허)하니 살았고, 죽되 하늘이 許(허)하니 죽었을 뿐

    죽어 안될 목숨이라면 죽인다고 죽어지랴

    首陽(수양)이 끊은 것은 기껏 人命(인명)이언만

    하늘에 통하는 그 天命(천명), 길이 千歲(천세)에 빛나옴을

    살아 안될 몸이라면  살린다고 살아지랴

    不義(불의)의 糧米(양미)는 먹되 生命(생명) 이을 피도 살도 안되거니

    죽고 삶을 가리지 않았으매

    骨灰(골회) 바람에 날린 지 半千年(반천년)에

    書院(서원) 앞 마당엔 울고 엎드리는 선비 찔 사이 없아옴을

    님은 이 고개 넘자 다시 地上(지상)의 人(인) 못되셨건만

    이 몸은 넘던 고개 도루 넘어 漢陽(한양)길 가옵네다

    고개마다 머리 돌려 님의 넋 모셔가옵고저

    당신은 여기 오셔 忠逆(충역)의 길 보이셨네

    당신은 죽음으로 하늘길 가르치셨네

    莊陵(장릉) 위 푸른 풀은 百人(백인)의 피,

    千人(천인)의 눈물 속에 永遠(영원)히 자랄 것을.

     

    <1943년 12월, 서울서 잡혀 묶여  堤川(제천) 거쳐 寧越(영월)갔던 때의 작>

출처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글쓴이 : 엇모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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