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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제주 해녀마을과 갈옷마을

by 풍뢰(류재열) 2007. 6. 23.
제주 해녀마을과 갈옷마을

   

 걸바다엔 제주여인들의 숨비소리 가득하고

휘유우, 휘유우… 제주의 여름바다는 숨비소리로 가득하다. 김녕 지나 세화, 애월과 한림, 성산포에서 우도까지. 제주의 바닷가 마을은 아직도 해녀마을이라 불릴 만한 마을이 적지 않다. 물때에 맞춰 바닷가로 내려가면 물새소리, 혹은 휘파람소리 같은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숨비소리(숨비질소리)는 무자맥질을 끝내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해녀가 물 속에서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길게 내뱉는 소리. 한번 잠수에 들어간 해녀는 길게는 2분까지도 숨을 억눌렀다 내뱉기 때문에 그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만큼 날카롭다.

화산섬인 제주에는 모래와 펄보다는 용암으로 뒤덮인 ‘걸바다’가 흔하다. 이 걸바다에는 우뭇가사리와 전복, 해삼 등이 풍부해 예부터 제주의 여자들은 물때가 되면 바다밭으로 나가 물질을 하고, 물질에서 돌아오면 밭에 나가 김을 매는 두 몫 잡이 밭일을 운명처럼 여기고 살았다. 잠녀라고도 불리는 제주 해녀는 바다밭과 뭍밭의 밭일을 쉼 없이 해냄으로써 고기잡이를 떠난, 혹은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의 몫을 악착같이 치러냈다. 제주 여자를 두고 생활력이 강하다고 부르는 것도 다 거기에서 온 내력이다.    

산은 험하고 바다는 사납다. 옛 사람들이 제주를 두고 표현한 말이다. 이는 아마도 화산섬인 제주가 지형적으로 높은 한라산을 품고 있는 데다, 오름이 많고 언제나 바람이 심해 고요한 바다를 만나기 어려운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말일 터이다. 이런 환경과 지리적 여건은 제주만의 독특한 생활풍속을 만들어냈으며, 아직까지도 면면이 이어져 제주 땅 곳곳에 숨결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다. 민속마을로 널리 알려진 성읍리는 조선시대 약 500여 년 동안 현청 소재지였던 바, 아직도 마을에는 조선시대 읍성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성읍에는 모두 30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의 집들은 집줄(매, 얼개)을 그물처럼 둘러친 띠집이며, 마을에는 모두 12개의 돌하르방과 안할망당을 비롯한 여러 채의 당과 10여 군데에 이르는 연자마(연자매), 옛 원형을 간직한 돗통시, 방사탑, 올렛담이 남아 있어 제주도 옛 산간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읍에는 제주도만의 독특한 생활도구도 많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물허벅과 애기구덕, 촘항(새촘)이다. 물허벅은 등짐용 물항아리이며, 촘항은 빗물을 받아 보관하는 항아리를 가리킨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예부터 처마 밑이나 큰 나무 아래 촘항을 두고 빗물을 받아놓은 뒤, 물허벅으로 날라다 식수로 썼다. 고인 물이어서 쉽게 썩을 것 같지만 촘 받은 물은 몇 달씩 묵혀도 썩지 않는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 앞에서 만난 해녀. 물질로 잡은 해산물을 일출봉 앞에서 팔기도 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썩은 물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촘항에 개구리를 기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만일 기르던 개구리가 죽으면 썩은 물이므로 버리고 다시 받았다. 대나무로 만든 아기 요람인 애기구덕도 제주 여인네의 억척스러움을 잘 드러내주는 도구인데, 이제는 쓰임이 다한 상태다.

옛 제주의 풍물 남아있는 성읍민속마을

이토록 가치 높은 민속유물과 볼거리로 넘쳐나는 성읍마을은 갈옷을 만드는 집과 파는 집이 모두 16곳에 이르러 갈옷마을로도 통한다. 특히 갈옷 염색을 들이는 여름철에 성읍마을을 찾는다면 샛집 마당 빨랫줄에서 펄럭이는 갈옷천과, 풋감을 으깨어 천에 물을 들이는 염색 과정을 쉽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는 갈옷을 갈적삼(저고리) 또는 갈중이(바지, 남자옷)라고도 불렀다. 제주 사람들이 언제부터 갈옷을 만들어 입었는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다만 몇몇 기록에 따르면 옛날에 어부들이 낚싯줄을 질기게 만들기 위해 돼지피나 소피를 칠하거나 풋감즙으로 물들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감물 염색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중산간 목장지대에서 바라본 한라산의 저녁 풍경

   김녕에서 함덕 쪽으로 펼쳐진 갯가의 저녁 풍경

갈옷은 풋감을 으깨어 나온 풋감즙으로 물들인 옷이다. 그러나 풋감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감물로 쓰는 풋감은 조생종 재래감이며, 일반적인 재배감은 감물을 들인다고 해도 염료의 색상이 약하게 배어 염색 재료로는 그리 적당하지가 않다. 보통 감물은 풋감이 나는 7~8월에 들이는데, 이 때 풋감을 채취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이듬해까지 쓰기도 한다. 감물을 들일 때는 먼저 깨끗이 세탁한 옷이나 원단을 준비하고, 채취한 풋감을 돌절구(분쇄기에 갈아내면 검은색이 너무 많이 나온다)에 곱게 으깬 뒤, 거기서 나온 찌꺼기를 망사자루에 넣고 함지박에 감즙을 우려낸다. 이렇게 우려낸 감즙은 물을 10퍼센트쯤 첨가하여 옷감을 꾹꾹 눌러주며 염색을 한다.

“옛날에는 생감을 방망이로 으깨어 다 손으로 했어. 감이 너무 덜 익어도 감물이 안 나고 너무 익어버리면 또 붉은물이 나와. 전통을 이어가며 해야 허는디 더러는 염색약 섞어서 허는 데도 있어. 지금은 육지에서도 허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제는 잘 팔지를 못해.”

마을에서 만난 김을정 할머니(80)의 말이다. 할머니는 갈옷 장인으로 20년 넘게 갈옷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갈옷이 잘 나가지 않는 데다 워낙에 힘든 일이어서 점차 갈옷 만들기에서 손을 놓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의 빛깔을 담는 갈옷마을 사람들

감물이 잘 든 옷감은 이제 빨랫줄에 잘 펴서 햇볕에 널어 말린다. 이 때 발색이 잘 되어야 고운 색이 나오는데, 말리는 동안 물을 골고루 뿌려주거나 적셔주면 훨씬 진한 색을 얻을 수 있다. 보통 옷감의 건조와 발색 과정은 날씨가 좋은 여름 날씨인 경우 3~4일, 햇볕이 약한 날에는 7~10일 정도가 걸린다. 감물 염색은 처음 옷감에 들여놓으면 물을 들였는가 싶을 정도로 색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발림이 계속될수록 황토빛 혹은 연한 갈색을 띠게 된다. 또한 염색하기 전에 부드러웠던 옷감은 발림이 다 끝나면 약간 뻣뻣한 옷감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렇게 뻣뻣한 옷감은 옷을 지어 여러 번 빨아 입다 보면 저절로 부드러워지고 색상도 연한 갈색으로 변한다.  

15년째 마을에서 갈옷을 만들어오고 있는 홍태선 씨(67)에 따르면 갈옷은 감물을 모두 세 번을 들이며, 말릴 때는 이슬을 맞히고 다시 발리기를 한 달 가량 해야 갈빛이 짙어지면서 제대로 된 갈옷천이 나온다고 한다. 갈옷은 질기면서도 바람이 잘 통해 여름철 옷으로 제격이다. 감물 성분이 방부제 노릇을 해 땀이나 비에 젖은 채 오래 두어도 썩는 일이 없다. 하여 옛날 풍토록에는 옷 한 벌을 가지고 30년을 살았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제주 사람들은 과거 갈옷을 입다가 해지면 기저귀로 썼고, 기저귀가 닳아지면 다시 걸레로 쓸 정도로 알뜰했다고 한다.

     대문 노릇을 하는 정주석과 정낭.

 띠집과 돌하르방과 돗통시와 연자마 등 온갖 생활민속자료로 가득한 성읍리 풍경.

갈옷의 색깔은 흙을 닮았다. 샛집의 지붕에 얹힌 억새의 빛깔을 닮았다. 그리고 그것은 돌담 옆이나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라는 자연이 가져다준 색이다. 성읍리 사람들은 이 자연의 빛깔을 입고, 자연의 빛깔을 만들어낸다. 샛집 마당 빨랫줄에 걸린 갈옷과 치렁치렁 널려있는 감물 들인 옷감은 저 하늘과 땅과 풀과 나무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하여 갈옷을 입고 총총 마실 가는 성읍리 사람들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갈옷의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성읍리는 민속마을로 널리 알려졌지만 너무나 유명한 관광지들에 밀려 정작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외면 당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제주의 정말 아름다운 속풍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읍리만한 곳이 없다. 물론 이곳을 찬찬히 밟으며 그네들의 생활을 들여다본 사람에게만 발견되는 아름다움이다.            

 

          글·사진 _ 이용한 여행작가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라져 가는 토종 문화의 흔적들을 더듬어오고 있다. 

성읍리에서 만난 한 갈옷장인이 감귤밭에 갈옷천을 널어 말리고 있다.

     

가는길

 

항공편과 렌터카(www.jejurentcar. co.kr, 제주자동차대여사업조합 063-746-2294)는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성읍에 가려면 제주공항에서 12번 해안 일주로를 따라가다 국립제주박물관 못 미쳐 우회전, 97번 동부관광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서귀포와 성산읍에서는 16번 도로에서 성읍리를 만날 수 있다. 성읍리에 잘 곳과와 먹을 곳이 많다.

 

문의 _ 제주도청 문화예술과 063-710-3414 /

성읍1리 사무소 063-787-1306 /

성읍2리 사무소 063-787-1367 /

갈옷 장인 김을정 노인댁 063-787-1360 /

홍태선 씨댁 063-787-0942 /

 

갈옷문의 _ 063-787-1306, 갈옷은 마을에서 최하 5만원부터 30만원 선 /

 

잘 곳 _ 늘푸른관광농원 063-787-2343,

산장민박 787-3542,

제주절물자연휴양림 063-721-4075 /

 

먹을 곳 _ 오라방식당 063-787-3330,

정의골식당 063-787-0934,

돌집식당 063-787-3720

 한라산 중산간 목장에서 만난 조랑말 가족의 한가로운 오후

 홍태선 씨네 띠집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은 빨래보다 갈옷천을 널어 말릴 때가 더 많다.

출처 :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글쓴이 : dall-le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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