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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아름다운 우리 바다, 우리 섬 기행 ⑤] 그 섬에 핀 개망초 - 시도

by 풍뢰(류재열) 2007. 6. 30.

 

   영종도로 가는 날은 흐린 날이었다. 섬에 들며 날씨 탓을 하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비 오면 또 비 오는 대로 섬은 다른 옷을 입는다. 그러니 배만 뜰 수 있다면 문제될 건 없다. 내가 정작 두려워하는 건 안개다.

수 년 전 새벽에 이탈리아의 밀라노 공항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며 본 안개는 한마디로 ‘유령의 군대’ 바로 그것이었다. 소리 없이 다가와 도시를 집어 삼키는. 호텔 앞에 서서 도시와 내 몸이 온통 안개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유령의 진주식(進駐式)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의 밀라노는 내게 두려움과 안개의 다른 이름이었다.


   영종도는 원래 네 개의 섬이었다. 가장 큰 섬인 영종도와 서쪽의 용유도, 북쪽의 삼목도, 남쪽의 신불도 사이를 매립하여 공항을 세우며 하나의 섬으로 연결되었다. 을왕리나 왕산해수욕장을 비롯해 용유, 마시란 해변이 있는 용유도와는 달리 지금은 선착장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탔다. 연육교가 설치되어 이제는 하나의 섬처럼 느껴지는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가 여기서 배로 십 여분 거리다. 신도로 가는 배 위에서 수 십 마리의 갈매기 떼와 함께 돌아오는 어선을 만났다. 만선인가 보다. 갈매기 울음소리에 섞여 어부의 콧노래가 들리는 듯 하다. 내 방 창가에 두고 보고 싶은,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


   고속(高速)이 미덕인 시대에 섬은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기 좋다. 시속 삼백 킬로를 넘나드는 고속열차의 차창에 기대앉는 것과 바다위에 떠가는 배 위의 낭만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속의 기쁨 보다는 저속의 행복을 나는 찾고 싶은 것이다. 낡은 버스 뒷좌석에 앉아 덜컹거리는 길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다. 섬사람들의 투박하지만 정겨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건 행운이다. 느릿느릿 걷게 된다면, 어쩌면 새소리에 발 맞춰 걷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고립지향(孤立指向)의 성격이든 독립지향(獨立指向)의 성격이든 섬은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투정도 미움도 없다. 흰색 팔레트 위에 파스텔톤 물감을 풀어 그린 듯한 섬은 포근히 안아줄 뿐이다. 


   사람들이 성실하고 순박하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신도(信島)의 선착장이 세 섬으로 가는 첫 관문인 셈이다.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섬에 오르자 구봉산이 앞을 막아선다. 나지막한 산엔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구봉정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조금 더 선명한 채도로 펼쳐질 것이다.

차는 연육교를 건너 시도(矢島)로 들어섰다. 시도는 ‘화살섬’이란 뜻이다. 고려 말 이성계와 최영 군대가 강화도 마니산에서 시도를 과녁삼아 활쏘기연습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시도와 모도를 잇는 연육교 입구에 ‘화살 탑’을 세워 이를 기리고 있다.

당시 명나라 초기의 혼란을 틈타 요동정벌을 꾀하고 있었을 최영은 후일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이성계의 야욕을 알고 있었을까. 새로운 왕조의 탄생과 대륙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반도국에 머무르고 만 안타까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시도에 흔적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시도로 불러들이는 것은 바로 한류의 성지라 불리는 드라마 세트장. 시도의 북쪽 수기해수욕장 앞에 새워진 ‘풀 하우스’ 세트장이 바로 그것이다. 올 여름에 몰려들 관광객들을 위해 해수욕장에 모래를 까는 작업이 한창이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세트장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만이 한가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관리인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세계각지의 한류 팬들이 수도 없이 다녀간다고 하니 손에도 잡히지 않는 문화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수기해수욕장이 있는 곳은 시도의 북쪽이다. 마주보고 있는 섬은 강화도. 서해에서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화리 낙조마을이 멀지 않으니 여름 밤 수기해수욕장의 아름다움은 가히 짐작이 된다.


   수기해수욕장에서 나오다가 작은 언덕에 무리지어 핀 개망초를 보고 차를 세웠다. 북미원산으로 구한말 도입되어 한일합방 당시 전국적으로 퍼진 국화과 식물이다. 퇴치가 쉽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망초와 개망초를 보며 사람들은 당시의 한일합방과 관련지어 ‘나라를 망쳐먹은 풀(亡草)’이라 부르게 되었다. 더구나 ‘개’ 라는 접두어를 붙여 원래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부르고 있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이 어떠했으면 들에 피는 하찮은 꽃 이름에게 까지 이렇듯 분풀이를 하였던 것일까. 강한 생명력이 죄일까. 시기를 잘못 맞춰 피어난 것이 죄일까. 하늘하늘 흔들리는 개망초를 애처롭게 바라보다 짧은 글 하나를 남겨두었다.


개망초 핀 언덕


그 해 여름

섬엔 개망초가 피었던가.

망국(亡國)의 한(恨)을 안고 돋은 소름은

농부의 손을 다칠까

차마 가시가 되지 못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오랗게 바랜 가슴속 멍은 보이는데

네가 바람을 흔드는 것인지

네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인지

그건 알지 못하겠다.


   모도(茅島)는 세 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섬이다.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 고기는 잡히지 않고 띠만 걸려 띠자를 써서 불리게 된 모도에서 볼만한 것은 역시 배미꾸미 해변의 조각공원이다. 모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해변으로 조각가 이일호씨가 빚은 조각 수 십 점이 해변에 펼쳐져 있다. 커다란 소라 조각 작품부터 남녀의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까지 대부분 중년층이 찾기 알맞은 작품들이다. 처음엔 당황스럽던 일부 작품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바라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작품이 놓여진 장소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시도로 돌아오는 길에 갯벌에 비스듬히 서 있는 통발 어선 한 척이 발길을 잡는다. 통발은 단순히 고기를 잡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삶과 희망을 건져 올리는 도구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 믿음이 없어진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집어등이나 그물과 통발을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누군가의 땀과 소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물이 드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처럼 빠르다는 걸. 갯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서 물이 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파업한 공장처럼 도로는 한산했고 자전거를 탄 주민들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오후다. 갈매기가 낮게 날며 울지 않았다면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갯벌위에 마음속의 선을 그어놓고 그 선에 물이 닿을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십분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오 분이 채 지나기 전에 기다림은 끝이 났다. 밀라노의 유령을 연상시키는 당당한 걸음이었다. 시도와 연결된 연육교 위에서 낚시를 드리웠던 낚시꾼 둘이 짐을 싸며 남은 미끼를 내 앞의 갯벌로 던져주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몰려든 갈매기들은 끼룩끼룩 울며 주위만 맴돌 뿐 먹이 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어서 먹어. 너를 해칠 사람은 없어’ 라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신경 쓰이는 눈치다. 갈매기들을 위해서 차에 오르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람들만 힘들게 사는 줄 알았더니 너희도 그렇구나.’ 

 

   섬은 모국어를 향한 몸살 같은 것이다. 모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내게 섬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이자 귀향점이다. 그래서 때론 섬으로 떠난 건지, 섬으로 돌아온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섬을 통해 세상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나를 바라보고 싶다. 안개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에도 내 희망의 등불은 여전히 섬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몸살을 앓는다.



2006. 6



출처 : 우인...세상의 끝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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