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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아름다운 우리 바다, 우리 섬 기행 ⑦] 통영에서 쓰는 편지

by 풍뢰(류재열) 2007. 6. 30.
 

   유난히 지루했던 8월의 태양은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듯한 기세로 남아 있습니다. 가을을 부른다는 풀벌레 소리 대신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매미 울음만이 아침을 온통 뒤 흔드는 요즘입니다. 제 방이 있는 2층 창가까지 훌쩍 커버린 나무의 잎사귀에서나 가로수를 흔들고 지나온 산들바람 속에서 저는 이미 가을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지금 통영(統營)에 와 있습니다. 가슴속 깊이 묻어두어서 후 하고 불어 켜켜이 쌓인 그리움의 잔상들을 걷어내고 나서야 만나게 되는 바로 그 통영 말입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통영입니다. 그래서인지 통영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내내 행복했습니다. 대전에서 연결되는 대전-통영간 고속국도를 마다하고 마산과 고성을 지나 통영에 이르는 14번 국도를 따라 돌아오면서도 누군가 가슴속에 행복의 거름을 뿌려놓은 듯 했습니다.

통영의 바다와 산, 그리고 통영의 바람이 키운 예술혼(魂)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만 이틀간의 이번 일정 중에 잊지 않고 들르고 싶었던 곳은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구한 충무공의 흔적과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의 한 여인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흔적입니다.


   통영을 방문한 날은 마침 한산대첩기념축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망일봉 기슭에 있는 한산대첩기념공원에 오르니 동호만과 남망산공원이 손에 잡힐 듯하고, 호수 같이 잔잔한 옥색의 통영 앞바다는 햇빛에 반사된 은구슬이 쏟아져 내린 것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떠있는 갈매기와 하얀 포말을 남기고 가는 어선들 그리고 바다에 잠긴 햇빛이 아른거리며 미세하게 바다의 색을 바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한산도 주변과 더불어 임진왜란의 승패의 분수령이 된 한산대첩(1592)이 있었던 바다라는 생각이 들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청마문학관은 한산대첩기념공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한국 근대 시문학사에서 생명을 소재로 치열한 사상과 열정을 불사른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청마문학관엔 각종 유품과 생전에 쓴 시집과 산문집 등의 문학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문학관 위에 있는 그의 생가는 시옷자로 된 초가집입니다. 청마의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유약국의 모습으로 복원된 생가의 담 너머로 다시 통영의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어린 시절 보고 자란 이 바다는 청마로 하여금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며 격정적인 그리움을 토해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의 ‘사랑과 그리움, 고독과 생명’ 들은 저 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어(詩語)들로 조각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을 보내기 아쉬워 북적이는 강구안을 뒤로 하고 남망산공원에 올랐습니다.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인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회가 열리는 시민문화회관이 통영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강구안도 역시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도시와 하나 된 항구의 모습이 정겹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멀리 통영운하 위로는 통영대교와 충무교가 수려함을 자랑하고,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동백나무 뒤로 한려수도가 펼쳐집니다. 통영 8 경중의 하나라는 남망산공원에서의 조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더구나 세계 유명 조각가 15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조각공원 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또 다른 예술작품이라 하니, 예술과 자연이 하나 된 통영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해 지기 전에 청마거리를 찾았습니다. 통영에 오면 꼭 찾아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학창시절의 저는 청마가 생명과 강인한 의지를 노래한 시인으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했던 사랑이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떤 이루지 못할 사랑이었기에 그토록 애달파 했는지. 청마(1908~1967)가 즐겨 걸었다는 중앙동 옛 문화유치원에서 통영우체국까지의 200여m가 청마거리입니다. 우체국 앞의 빨간 우체통 옆에는 펼쳐진 책 모양의 돌 위에 그 유명한 ‘행복’이란 시가 새겨져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즐겁고 슬프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전문)


이 시는 1954년에 발간한 청마시집에 실려 있는 시로 청마의 연인이었던 정운 이영도 선생에게 보냈던 시입니다. 당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던 청마는 결핵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된  여류 시조시인이자 수필가였던 정운에게 숱한 연모의 시를 썼습니다. 이 이루지 못할 고통스러운 사랑에 두 사람은 20년간 5,000통이나 되는 글을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청마는 지금의 ‘이문당 서점’ 자리에 위치한 건물의 2층에서 우체국을 내려다보며 편지를 쓰고 이 곳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고 합니다. 이 우체국 주변이 그들 사랑의 추억의  장소인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사랑이었을까요? 혹자는 청마를 가리켜 여성 편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청마 자신도 자신의 적지 않은 애정행위에 대해서 자책하는 말을 했습니다만, 어떤 시인은 “청마의 이와 같은 여성 편력은 세속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존재의 영원성에 대한 생의 갈망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그의 시작(詩作)에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청마가 정운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나를 볼 수 있는 시가 있습니다.


조찰히 맑은 아침

먼 천상에 선 듯

소리없이 땅에 지누나.


오직 높으고 으젓하기에

당신 같은 꽃.

하늘만한 애모의 애달픔에도

끝내 도이(桃李)처럼

스스로 낮추지는 않았거니.

목숨이란 본시

한낱 죄욕일진대

입어야 하던 청춘도

이제사 남길 회한(悔恨) 하나 없이

회한과 함께 하나 둘

부끄러운 의상인양

발 아래 던져 벗는 당신이야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랑이매

오동꽃 소리없이 지는 아침은

심심산골 앓이는

간장속 저물은 뻐꾸기 울음소리.......


(유치환 ‘오동꽃’ 전문)


1957년 12월에 펴낸 제 9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정운을 만난지 이미 십여 년이 지난 후의 시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사랑에 뻐꾸기 울음 같은 속병을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루고 싶은 사랑임에도 오동꽃처럼 늘 의젓하고 고고하게 있어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세속적인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청마를 향한 정운의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바라기도 하리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루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리라.


(이영도 ‘무제’ 전문)


누가 감히 이런 사랑을 해보았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감히 이런 사랑을 세속적인 사랑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 고독 때문에 늘 사랑을 그리워한다는 당신.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이기에 한 사내를 저토록 오랜 세월동안 생살을 베어내는 듯한 고통을 참고 견디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고고하고 순결한 청마의 사랑법에 가슴에 메어와 북포루(北鋪樓) 누각이 세워진 여황산 아래 우체국 앞을 떠날 줄 모르고 서성이고 있습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남망산공원이나 통영운하등을 마다하고 미륵도를 향하는 것은 달아공원에서의 낙조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길은 통영대교를 건너며 길가에 줄지어선 동백나무 때문에 동백길로도 불린다는 산양관광도로로 이어집니다. 봄의 통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지친 해가 토해 놓은 것 같은 노을을 따라 동백길을 달립니다. 노을 속에서 차를 달리는 일은 세상의 모든 하찮은 것들까지도 그리워지는 순간입니다. 

당신. 언젠가 길 떠나는 여행자들에게 하루의 해가 지는 것을 길에서 맞게 되는 저녁 무렵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셨지요.

모르실겁니다. 혼자 길 위에 선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를. 더구나 지금처럼 긴 꼬리를 달고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는 순간에는 말로 표현 못할 고독과 싸워야 한다는 것을. 짐작도 못하실 겁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얼마나 애타게 부르는지를.


   통영 8 경중의 하나인 달아공원에서의 낙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낭만적입니다. 한산면, 사량면, 욕지면 관내의 대부분의 섬들이 한 눈에 다 볼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습니다. 북쪽으로 대장재도, 소장재도, 추도, 곤리도, 두미도가 앞을 막아서고, 남쪽으로 저도, 학림도, 연대도와 멀리 연화도와 욕지도까지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 섬들 사이로 해가 집니다.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요.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말하면 성의 없는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태어나 이 바다를 보며 자란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과 박경리 그리고 전혁림과 윤이상등이 우리가 존경하는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풍경이라면 이해하실 지요.


   돌아오는 길에 한적한 포구에 들렀습니다. 조그만 방파제가 있을 뿐 이렇다할 등대도 없는 조그만 포구입니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창문을 열어 놓고 포구가 품고 있는 삶의 냄새를 맡고 싶었습니다. 서너 발자국만 다가가면 닿는 바다위에서 깊은 잠에 빠진 배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에 찍힌 온통 푸른 하늘과 바다색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껏 봐왔던 통영의 색은 그리움의 푸른 색 바탕위에 덧칠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해가 지며 이렇듯 본래의 푸른색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 아십니까. 통영의 바다와 통영의 바람은 절반이 그리움이란 것을.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들른 곳은 통영수산과학관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어제 낙조를 보았던 달아공원과 가까운 거리지만 이 곳은 특별히 일출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이미 일출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지났지만 한려수도의 섬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안개가 가시지 않은 섬들은 마치 물 속에서 솟은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앉은 것 같기도 합니다. 꿈속을 거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풍경에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견이 봤다면 또 다른 몽유도원도를 그렸을 것입니다. 누군가 ‘저 섬엔 누가 사느냐’ 고 묻는다면 ‘사람이 산다’ 고 대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통영의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유람선을 탔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해금강. 거제시에 속한 곳으로 지난 거제 여행 때 들르지 못했던 곳입니다. 힘에 부친 노자산이 바다에 잠기는 듯하다가 불쑥 솟아올라 아침 햇살에 만물상의 장관을 이루는 해금강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통하는 크고 작은 해로의 문이 있는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해와 달이 뜬다는 일원관암, 병풍 같은 병풍바위, 신랑 신부가 전통혼례를 올리는 것 같은 신랑신부바위, 돛대바위, 미륵바위, 거북바위등의 모습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눈앞에 나타났다 스러져갑니다.


배는 다시 통영시 소재 소매물도로 향합니다. 지난 2월 여행 때 왔던 곳이지만 몇 번을 더 와도 가슴 설레는 곳입니다. 통영 8 경의 하나인 이 곳 등대섬의 경관은 바다에서 봐도 장관입니다. 해금강과 함께 진시황이 보냈다는 서불의 흔적인 ‘서불과차’ 라는 글씨가 있었다는 이 곳은 해안 곳곳에 발달한 해식애와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솟아 오른 하얀 등대가 언제 보아도 동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소매물도의 선착장 위로 하얀 민박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꽁치가 들어간 시레기국을 건네주던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웃는 모습이 한없이 그리워집니다.

우리나라에서 꼭 가고 싶은 단 한 곳의 해수욕장인 비진도 해수욕장 앞을 지나 배는 한산도에 도착합니다. 산위에 장군처럼 서 있는 한산대첩기념비와, 일본을 향해 서 있다는 거북등대가 맞이하는 이 곳은 1592년 7월 7일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을 대파함으로서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꿔놓은 한산대첩이 있었던 곳입니다. 호수처럼 맑은 바닥이 훤히 보이는 이 주변 바다는 보기만 해도 천혜의 요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멀리 망산 기슭에 있는 수루(戍樓). 저 수루에 기대서서 고민했을 그의 조국에 대한 충정과 열정이 느껴져 제승당(制勝堂)까지 걸으며 내내 숙연해졌습니다.


   가을을 기다리며 달려왔던 통영에서의 이틀. 이제 짙은 아쉬움을 삭히며 통영을 떠나려 합니다. 통영을 떠나지만 통영은 저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감성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채 오랜 시간 동안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백꽃이 활짝 필 가로수 길과 도시 어디서든 고개를 돌려 마주할 통영의 바다들. 그리고 갯바람에 실려 온 그리움의 흔적들을 저라고 어찌 쉬이 잊을 수 있겠습니까. 짧지만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일 년만 아니 한 달만이라도 통영에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세병관과 착량묘에서 충무공을 다시 만나고, 북포루에서 통영을 바라보거나 미륵산에서 한려수도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윤이상과 박경리 선생의 흔적도 찾아보고, 아직 들르지 못한 사량도, 욕지도, 연화도의 섬들로 떠나고 싶습니다.


   당신. 우리가 다시 만나는 곳은 통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봄날, 동백꽃이 만발한 미륵도의 어느 포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사람이 꼭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06. 08





출처 : 아름다운 우리 바다, 우리 섬 기행
글쓴이 : 우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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