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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여행

[스크랩] [아름다운 우리 바다, 우리 섬 기행 ⑥] 구룡포와 영일만에서 만나는 바다

by 풍뢰(류재열) 2007. 6. 30.

 

   차는 경부고속국도 도동분기점에서 이어진 대구-포항 고속국도를 달리고 있다. 두 도시의 거리를 한 시간 이내로 줄여 놓은 20번 고속국도, 그 동쪽 끝은 포항이자 영일만(迎日灣)이다. 경주와 포항을 관류한 형산강이 60여 킬로미터를 흘러 바다의 품에 안기는 곳이며, 이름 그대로 ‘해를 맞이한다’ 는 곳이다.

포항에서 길은 다시 31번 국도로 이어진다. ‘감포’ 가 그리 멀리 않았다는 이정표를 보자 괜히 설레었다. 수년전 감은사지와 대왕암, 이견대를 알고 싶어 몇 차례나 방문하며 들렀던 그 곳에 꽤 정을 주었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부산이나 제주보다도 멀었다. 감포가 지닌 객관적인 크기나 무게보다 내 가슴속의 그것이 훨씬 더 컸다. 그래서 언젠가 있을 동해안 일주 여행에도 감포를 출발점으로 정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925번 지방도를 따라 구룡포에서 호미곶을 돌아 포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 출발점이 바로 구룡포다. 신라 진흥왕때 해안에서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고해서 붙여진 구룡포(九龍浦). 남쪽으로 꺾어지는 31번 국도를 벗어나자 바로 눈앞에 구룡포항이 나타났다.


   정확히 열흘 전에 난 이곳에 있었다. 태풍 에오니아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그 날, 세상의 모든 배가 모여든 것처럼 구룡포항은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태풍속의 바다. 그 거친 분노의 바다 앞에 겸손해지지 않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얼굴을 때리는 세찬 비바람에 뱃사람들은 서둘러 뭍에 오르고, 이물께에 추억을 가득 실은 배들은 서로 상대방의 그리움을 질투하듯 커다랗게 매단 고무 타이어를 부딪고 있었다.


   항구에는 특별한 냄새가 있다. 땀 냄새, 기름 냄새, 술 냄새, 독한 담배 냄새, 값싼 화장품 냄새 등이 비릿한 바다 냄새에 더해져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손을 뻗으면 정박해 있는 배가 닿을 듯한 거리에 있는 식당에 앉아 먹는 횟밥의 절반은 이런 종류의 냄새들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내가 이런 냄새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노동만으로 삶을 영위하는 곳의 생활이 때론 훨씬 가슴에 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바닷바람에 터진 상처를 보이듯 포장되지 않은 진솔한 삶이 언젠가 눈물나게 그리워질 수 있다는 것도.

구룡포항의 방파제 끝까지 차를 몰았다. 대낮처럼 집어등(集魚燈)을 밝힌 두 척의 배와 출항준비를 막 마친 듯한 사람들 모두 활기차 보였다.


“이 배는 어디 갑니까?“


검은 피부에 마른 얼굴. 눈 주위에 작지 않은 상처까지 있어 전형적인 뱃사람의 인상을 풍기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러시아 갑니다.”


대답은 의외로 쉽게 돌아왔다. 뱃사람 특유의 투박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궁금한 것 몇 가지를 더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러시아 쪽으로 가시는군요. 얼마나 걸립니까?”

“6 일이요.”

“6 일이요?”


6 일 동안이나 항해한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는데 6 일 오는데 6 일 걸립니다. 왕복 12 일 걸립니다.”

“그럼 조업은 얼마나....“

“운이 좋으면 20 일이면 되지만 아니면 40 일이나 있어야 합니다. 식량 때문에 더는 못 있구요.”


그럼 최장 52 일이나 바다위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서 바다와 싸운 흔적이 한 움큼 묻어나왔다.


“근해에는 오징어가 없나요?”

“근해에 나가는 작은 배는 따로 있습니다. 이 배는 연료와 식량까지 다 실으면 100 톤이 훨씬 넘습니다.”

“선원은 몇 분이나 가세요?”

“과거엔 스무 명까지 탔죠. 요즘은 임금이 비싸서 여덟 명이 갑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온다 싶었는데 갑판에 쭈그리고 앉아 독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며 하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기름이 한 통에 6만원할 땐 그래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10만이 넘어요. 그러니 도대체 남는 게 없지.....그렇다고 때려치울 수도 없구....”


묻지도 않았는데 미간에 깊은 주름을 보이며 내뱉듯 한 것은 말이 아니라 한숨 같은 것이었다. 서울 말씨에 사진이나 찍어대는 나를 통해 뱃사람의 어려운 사정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한숨에 섞인 그의 담배연기가 구룡포항에 다 흩어진 후에야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세상은 얼마나 겸손하게 살아야하는 것일까.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나의 여정, 그 속에 묻혀진 사람들의 삶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태풍속의 바다에 섰던 열흘 전 기억까지 더해져 다시 한번 내 여정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925번 지방도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바다에 담구고 창해를 향해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무엇을 낚고 있는 것일까. 카메라 앵글을 맞추는 외지인의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 조심스럽게 발길을 돌렸다.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구룡포해수욕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말발굽 보양으로 휘어진 해변은  MT를 온 것으로 보이는 남녀 열댓 명이 공놀이를 하는 것 말고는 조용했다. 줄지어 늘어선 천막식당들의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도 느긋하게만 보인다. 바보 같은 세상이야기들을 다 잊고 여기서 단 며칠만 아니 바다에 발목만이라도 담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매바위’ 라는 이정표 앞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자 바다와 한층 가까워진 해안도로가 눈앞에 펼쳐진다. 매 같이 생긴 매바위 주변으로 바위 전체가 검은 흑바위와 울창한 흑송을 배경으로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노란색의 황암 틈새에서는 세찬 해풍에도 굴하지 않고 해국화가 핀다니 질긴 생명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역시 섬의 해안을 따라 여행 하려거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 일이다. 반대편 차들로 인해 방해도 받지 않을 뿐더러 그 만큼 바다와 가까워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착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해안도로는 바다와 소나무군락지의 샛길을 지나 호미곶(虎尾串) 해맞이 광장으로 이어진다.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꼬리부분에 해당된다고 기록한 사람은 육당 최남선과 격암 남사고 선생이었다. 또한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이 곳이 한반도 최동단임을 확인하였고, 육당은 호미곶을 우리나라 최고의 일출지로 꼽았으니 해맞이 공원이 들어선 장소로서는 최적이 아닐까 싶다. 호미곶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상생의 손’ 이다. 전쟁과 갈등을 벗고 새 천년엔 온 인류가 서로 화합하자는 의미로 제작된 것으로 바다에 놓인 오른 손은 청동의 푸른색이 다소 찬 느낌이 강하기는 하지만 일출시 해의 따뜻한 느낌과 융화되어 피사체로서는 훌륭해 보인다.

‘상생의 손’ 옆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가 서있다. 일제에 의해 장기곶(토끼꼬리)이라 불리던 1900년대 초반, 영일만 주변에서 일본인이 조난당하는 사고로 인해 일본의 압력으로 지어진 등대다. 일본이 국내에서 저지른 만행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만 우리의 정기를 끊으려 호미곶 주변에 쇠말뚝을 박은 일과 함께 이 곳에 남겨진 가슴 시린 일제의 흔적이다.

지리적으로 호미곶 주변은 바람이 강한 지역이다. 호미곶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풍파가 심한 날 물고기가 밀려나와 갈고리로 주워 담았다는 마을이다. 호미곶 광장에 있던 풍력발전기가 떠올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마을에 ‘독수리바위’ 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누가 봐도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이 바위는 세월과 파도와 바람의 합작품이다.

세월을 따라 이렇게 길을 가다보면 내 무딘 감성을 바람이 아름답게 깎아 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보항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 곳을 처음 찾은 외지인이라도 양쪽 방파제 끝에 마주 서있는 하얗고, 빨간 등대를 본다면 누구나 걸음을 멈출 것이다. 대보항의 첫 인상은 아담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크고 복잡한 것 보다는 이렇게 작고 한적한 곳을 좋아하게 된 것이 세월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잦은 발길이 이 곳 사람들을 세속으로 이끄는 발길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 근처를 돌며 새까맣게 시누대에 꿰어 있는 과매기를 보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일인데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휑하니 비어있는 살창이 왠지 쓸쓸하다. 찬 바다에서 건져 올린 등 푸른 청어의 눈을 꿰어 엮고, 차가운 바닷바람과 밥을 지을 때 나는 훈기에 번갈아 얼고 녹고를 반복하며 맛을 내던 과매기는 요즘은 북태평양 산 냉동 꽁치로 대체되었다. 과거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음식이 오늘날 웰빙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웠다. 멀리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제철소의 굴뚝이 자랑처럼 서있고 바다는 솜털처럼 잔잔하다. 창해가 펼쳐졌던 구룡포 주변의 거친 바다와는 전혀 다른 바다라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고요함이다. 호미곶이 거대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저녁 어스름에 지친 해가 바다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잠시 후면 이 도로위에도 황금 같은 석양이 떨어지고, 그리움이라 불렀던 바다위엔 하나 둘 집어등이 켜질 것이다.

지난날 이 길을 갔던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노을을 기다리고 있을까.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삶을, 내 앞에 놓여진 길을 나는 제대로 걷고 있는지 모르겠다.



2006. 07




출처 : 우인...세상의 끝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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