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나는 "한국 국민전체가 입을 상처를 걱정한다"라는 글이 블로거뉴스 메인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서 궁금한 마음에 자세히 읽어보았다.
글의 내용은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이 미국의 9.11참사에 비견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에서처럼 한국사회에도 일종의 공황심리가 생길 수 있고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유발해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며 테러는 결국 인류애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얘기로 글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테러가 인류애를 파괴하며 보편적인 인성에 어긋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 또한 원론적으로는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을 단순한 테러로 보는 시각에는 약간의 시각을 달리하므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글은 윗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테러와 인류애에 대한 보다 진지한 보충설명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여러분은 아프간이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의 요충지이듯이 아프간은 예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19세기만 예를 들어도 당시 최강대국인 대영제국과의 전쟁으로 점철된 아픈 역사를 가졌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는 1979년 구 소련의 무력침공과 10년간의 구 소련지배하에서도 무장투쟁을 통해 자주적 독립을 꿈꾸었던 강인한 민족의 나라가 바로 아프간인 것이다. 구 소련은 냉전당시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세계 초강대국이었다!
구 소련과의 무장투쟁중 투철한 이슬람원리로써 아프간 세력을 규합하고 소련을 아프간에서 몰아낸 이들이 바로 지금의 아프간 탈레반이다.
아프간 탈레반이 독립투쟁 과정중에 미국으로부터 많은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것은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아프간 탈레반은 구 소련이 물러간 후 오랜 정쟁끝에 1997년 마침내 아프간 정권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구 소련체제 이후 미국과 아프간 탈레반과의 밀월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말았다. 2001년 9.11참사가 벌어지자 놀랍게도(!) 사건 발생후 약 30분만에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인물을 9.11참사의 범행의 주동자로 곧바로 지목하고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 탈레반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이끌어낸다. 당시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오사마 빈 라덴이 9.11참사의 진짜 주범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주장하고 신중하고 객관적인 국제사회의 사건조사를 거듭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의 아프간 공습계획이 임박하자 문제의 오사마 빈 라덴을 아프간 국경지대로 추방하겠다고까지 최후의 절충안을 미국에게 제시했으나 미국은 막무가내로 아프간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해 수천~수만에 이르는 죄 없는 아프간 민간인들이 죽어가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흔히 우리는 보통 힘없고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민간인이 신체적인 억압을 당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빼았길때.. 더 나아가서는 그런 일련의 행위의 목적이 정치적이거나 해당국가의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때 테러라고 규정을 하곤 한다. 그런데 미국의 공습으로 인한 죄 없는 아프간 민간인들의 대량학살은 정당한 전쟁이고 그런 미국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겠다는 아프간 탈레반은 그냥 단순한 테러세력인가?
테러의 개념에 대해서 뭔가 우리 모두가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닐까? 보편적인 인류애적 시각으로 볼 때 말이다! 물론 지금의 아프간 인질피랍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나의 이런 애기가 너무나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마 많은 분들이 화를 내거나 비판을 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항상 불편하다!
아프간 공습전에 미국이 주장한 바로는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의 폭정을 불식하고 아프간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보편적인 인류애를 아프간에 실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프간 공습의 목적이라고 했는데 왜 요즘은 조용할까?
그렇다면 미국의 아프간 공습후 지난 6년간 아프간은 과연 미국이 말한대로 더 민주적이고 더 살기 좋은 인류애가 듬뿍 넘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현재 아프간은 아프리카의 차드·수단·소말리아와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꼽힌다. 아프간을 지원하겠다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다짐은 지난 6년 동안 아프간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유엔개발기구(UNDP) 등 국제기구의 자료를 보면, 아프간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은 5살 이전에 숨진다.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안전한 마실 물을 공급받고 있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25%에도 못 미친다. 평균수명은 고작 45살에 불과하다.
이게 인류애적으로 볼때 과연 온당한 현상인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전쟁으로 깡마른 땅과 험준한 산뿐인 아프간의 재건·복구를 위해선 막대한 재건 자금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은행은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아프간의 현 재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향후 10년 동안 모두 150억달러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지난 6년 동안 막대한 군사비를 아프간에 쏟아부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재건·복구 지원엔 너무나도 인색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등이 2002~2006년동안 아프간에서 사용한 군사비는 약 825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같은 기간 재건·복구 예산은 군사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3억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지금의 아프간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아프간의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은 아프간 민중들에게 탈레반의 정권복귀를 바라는 빌미를 제공했으며 현재 아프간은 탈레반과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과의 전면적인 내전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비록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만 거의 정전에 준하는 평화상태로 거의 60여년 이상이 흘렀고 전쟁의 참혹함과 폐허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전쟁이 참으로 끔찍한 것이고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성과 정신세계를 황폐화시킨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데도 우리 사회는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하면서(비록 그것이 비전투군이라 할지라도!) 심각하게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파병을 한 것인지 되묻고 싶은 것이다.
글머리에 언급했던 글을 쓴 모 블로거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인류애를 언급할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고 난 반성한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무나도 미국적인 시각과 잣대로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세뇌된 로봇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명제조차도 미국과의 관계라는 계산이 추가되면 모든게 복잡해지고 꼬여버리며 다들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아프간 탈레반입장에서 볼때는 미국이란 외세가 아프간을 침략했고 친미정권을 아프간에 내세웠으며 자신들을 탄압하고 죽이고 있다고 보지 않겠는가? 그들의 저항은 테러가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닐까? 이게 보다 넓은 인류애적 시각이고 테러라는 시각에서 해방되는 길이며 폭력의 악순환을 넘어 그들을 이해하고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을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는 길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우리나라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런 아프간의 전면적 내전의 와중에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아프간에 들어갔다가 운나쁘게도(?) 억류되어 전면적으로 미국과 대치중인 탈레반의 정치적 요구의 협상카드로 이용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이성적이고 올바르지 않을까?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프간의 재건을 수행하러 지원군을 파병하는 정도의 국가라면 최소한 모든 국민들이 아프간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국민적으로 합치된 의견이 아프간 파병전에 선행되었어야 했다! 최소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는 일인데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무심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무조건 미국이 원하면 이 세상 어디라도 우리 젊은이들을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 위험한 사지로 계속 보내야만 하는 걸까?
이게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심성의 한계이며 보편적 인류애란 말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인류애를 논하지 말고 그냥 우리 국민의 무사귀환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의 우리사회의 무관심한 분위기로 봐서는 결코 인류애를 들먹일 자격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 윤하사도 아프간에서 미국에 대한 아프간 저항세력이 투척한 폭탄으로 인해서 산화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단지 고 윤하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생각과 아까운 젊은이의 희생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답답한 사회현실을 보면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난 우리 사회가 이번 피랍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겠지만 인류애적 심성이 망가질 정도의 충격을 받을 거라고는 보지 않는다. 현재의 지극히 무관심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라면 물불안가리는 사회분위기로 보아서는...좀 심하게 말해서 아프간 피랍사건은 단지 이슈화되어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아프간 피랍사건을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고 계속해서 황당함을 느끼는건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런 위험한 전쟁터에 내보낸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이렇게도 국민의 생명에 무관심하고 무책임할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땅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파병했으면 만일의 사태를 위한 확실한 외교창구나 언론창구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랬다면 이번 인질사태애서처럼 급박한 위기상황에 보다 잘 대처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뭔가! 아프간 피랍인질이 죽었는지 석방되었는지도 확실치 않다니...! 비록 지금 피랍된 인질들처럼 민간인이 아닌 군인들을 아프간이나 이라크에 파병했다고 주장할지라도 그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우리의 자식이며 친구요 이웃이 아닌가! 아프간 피랍후의 경과보고가 수시로 180도 바뀌면서 그런 실속없는 언론보도에 국민들 모두가 일희일비하며 이런저런 말들이 끊임없이 나오게 한 빌미를 지금의 정부가 제공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은 아프간에서 피랍된 우리 국민이 하루빨리 무사귀환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진심으로 일부 외신보도가 오보여서 모두가 무사귀환해야 한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정부의 외교채널의 다변화와 언론의 전담창구같은 구체적인 사안들도 반드시 공론화가 되어서 혹여 이런 아프간 피랍사건과 같은 일들이 다시 생겼을때는 외신보도를 그대로 따라 읽는 한심한 앵무새놀음은 이젠 청산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 사항
아프간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
중앙아시아 지역의 석유매장량은 지금까지 카자흐에서만 200억배럴 등 모두 3조달러어치가 확인돼 있다. 부근 카스피해 연안에는 세계 석유의 20%, 천연가스의 13%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그 자원을 어떻게 서방시장으로 연결하느냐는 것이다. 서방은 기존 통로 대부분을 독점하고 있던 러시아와 반서방적인 이란, 전략적 잠재적국인 중국을 피해야 했다. 남은 통로는 아프간을 통해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아라비아해로 빠지는 것이었고 이 통로는 거리도 짧아 경제성도 높았다.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북해로부터 오는 파이프라인의 건설은 부득이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경우 중국도 에너지 확보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현재 석유 수입국으로 전락한 중국은 중동국가들과의 협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특히 아프가니스탄 주변의 국가들은 미-중의 에너지 각축장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석유전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걸프전쟁은 석유전쟁이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번 (테러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마찬가지다." 2001년 10월 25일 영국 텔레비전의 7시 뉴스에서 리엄 핼리건 기자는 "(테러 외에) 아프간 공습의 또 다른 동기"를 묻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사흘 전인 10월 22일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은 오시마 겐조 유엔 사무차장에게 "아프가니스탄 지원의 일환으로 파이프라인(석유, 개스 수송관) 건설사업을 추진할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한겨레, 01/11/06).
- 석유 협회보 2002년 3월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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