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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사회

[스크랩] 내 마음의 수필

by 풍뢰(류재열) 2007. 6. 29.
자유기고가 장단미의 이동토스트
김미루 편집장, miru0808@hanmail.net  
 
일산에서 머물던 어느 아침에 산책을 하고 오던 길입니다. 평상시에 매일 아침이면 마시는 커피가 문득 그리워 길거리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어디에 가면 아침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가를 알지만 이 곳은 너무 생소합니다. 휑한 길거리를 둘러보다가 제 눈에 길가에 세워진 차에서 '토스트'란 간판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커피도 있을지도" 하면서 다가서는데 토스트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두 고운 여자 분들이 그 차 안에서 저희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커피 되는가요?" "네, 커피 됩니다." "두 잔만 주시겠어요?" 그냥 들고 가면서 마셨을 내가 그 두 사람이 엮어내는 삶이 궁금해 엉거주춤 앉았습니다. "앉아도 되지요?" 아무 의미 없는 대화가 잠시 오고 가는 도중에, "근데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하시려고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빚 갚아야 해요." 라고 그냥 선뜻 대답이 오는데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것을 그분 옆에서 도와주던 그분 친구가 "어머 얘가 오늘은 웬일일까? 그렇게 말을 않는 아이가? 라고 하며 주위에 떨림이 있는 여운을 거둬들였습니다. 그 말에 힘을 입어서 나도 모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예의로 절대로 묻지 않았을 질문들에 보통 때 같으면 절대로 대답하지 않았을 부분들을 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대답을 하는 사람이나 이유도 모르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빠는?" "애들은?" "실례지만 연세는?" 쉽게 하는 질문에 쉽게 하는 대답들 보통 때에는 나오지 않았을 대화입니다. 그 동안에도 옆의 친구는 "어머 얘가 오늘 왜 이럴까?"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쁘고 지적인 용모에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며 이동 토스트가게를 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런 사람, 그러나 그 맑고 자신 있는 눈에는 내 가슴을 시리게 하는 애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엄마가 갑자기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었지요." "도시락을 싸가지고 갈 수가 없던 날이 무수히 많았답니다." 그녀의 눈이 나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꺼내게 했습니다. "분명히 잘 될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잘되는 날이 올 거예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잘 견뎌내시길 바래요. 애들은 이런 역경이 삶에 좋은 양식입니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랍니다." 제가 조용히 해드린 얘기입니다.

그리고는 '미드라쉬' 라는 유대교 문헌에 전해지는 얘기를 잠시 했습니다. 제가 가끔 제 자신에게 들려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미드라쉬' 라는 유대교 문헌에서 인용합니다. 어느 날 다윗 왕이 궁중의 세공인에게 명령 했습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라.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치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기도록 하라. 또한 그 글귀는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도 함께 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하느니라." 세공인은 명령대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대체 어떤 글귀를 넣어야 하는 거지?" 고민하던 그는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기여 왕자님, 왕의 큰 기쁨을 절제케 함과 동시에, 크게 절망 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솔로만 왕자가 조용히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말을 써 넣으시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승리에 도취한 순간에 그 글을 보면 자만심은 곧 가라앉을 것이고, 동시에 왕께서 절망 중에 그 글을 보시면 이내 큰 용기를 얻게 될 것이요."』

"이 모든 것은 지나갈 겁니다. 훗날에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띠우면서 오늘을 되돌아 볼 날이 있을 겁니다." 라고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일어나 커피 넉 잔의 값을 물으니 "이천 원이에요." 라며 배시시 웃는다. "음?" 둘러봐 가격표를 확인하니 분명히 사천 원이 되어야 한다. "그냥 다 받으세요." 라는 내 말에 "다 그냥 못 드려서 제가 죄송합니다." 라는 그녀의 대답이다.

돌아오는 길은 온통 그녀의 눈빛이었고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메어오던지 그러면서도 '희망'이 남실거리는 그런 아침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해낼 거다 라며 혼잣말을 입 안에 삼키면서 좋은 아침거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걸었다. 나갈 때는 뭔가 답답함이 있어 산책을 갔었는데 그녀와의 대화는 나의 하루를 밝은 빛 속으로 들여보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은 이 세상이 간직해야 하는 가장 필요한 부분들 중의 하나리라.

며칠을 보낸 후 홍콩의 집으로 돌아온 오늘, 그 동안 내 마음에 떠나지 않고 있던 그녀의 눈빛은 마침내 내게 글을 쓰게 한다. 불현듯 내가 일산의 거리에 서있는 느낌이다. 오늘 아침에는 얼마나 팔았을까? -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아 영상이 되어 내 눈앞에 있는 '이동 토스트'-


ㅡ 이동 토스트 ㅡ 장단미(자유기고가. 홍콩거주. 저서<풀잎처럼 산다>



"살아있는 문화뉴스" - 뉴스팬
2007-04-23 오후 1:5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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