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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진돗개, 세계로 뛴다

by 풍뢰(류재열) 2007. 6. 23.

진돗개, 세계로 뛴다


한국의 진돗개가 세계를 사로잡다
최고 권위의 애견연맹인 영국 케널클럽, FCI서 ‘세계명견’으로 공식 승인
식견국 이미지 벗고 국제도그쇼 출전·수출길 열려…영국인 분양신청 잇따라


▲ 한국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돗개. 강건한 체구에 타고난 청결성.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영민함으로 이제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2003년 3월 9일, ‘크러프츠 도그 쇼(Crufts Dog Show 2003)’가 열린 영국 버밍햄 국립전시장은 유럽, 미주, 아시아 30여개국에서 엄선된 2만마리의 개와 12만명의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지구촌 최대의 애견 전람회로 10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크러프츠 쇼는 ‘애견인의 월드컵’이자 ‘개들의 올림픽’이다.

63세의 품종사육사(breeder) 멕 카펜터는 참관객에게 둘러싸인 ‘장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아빛 털로 뒤덮인 아프간 하운드, 눈처럼 하얀 몰티즈, 병사처럼 건장한 그레이트 데인 같은 명견 속에서도 그녀의 개는 단연 돋보였다. 북방견 특유의 말린 꼬리를 풍성하게 흔들며 적갈색 눈빛을 쾌활하게 반짝였다. 다른 개와 달리 쪼그려 있거나 엎드려 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야성(野性)이 걱정이었는데 오늘은 아이들과 천연덕스럽게 잘 놀아준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와 탄성이 터졌다. “Lovely!” “Looks intelligent!”

네 살배기 장군은 한국의 작은 섬 진도에서 왔다. 그녀가 아는 한국은 ‘개를 잡아 먹는 나라’였다. 8개월 전, 한국 기업 삼성 측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국견(國犬)을 크러프츠 쇼에 내보내고 싶으니 사육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녀는 망설였다. ‘동호인의 비난을 받을 게 뻔한데…. 형편없는 개를 보내오는 건 아닐까?’ 열여섯 살 때부터 평생 브리더의 외길을 걸어온 그녀는 크러프츠 쇼를 주관하는 영국 케널클럽(KC:The Kennel Club)의 신규품종위 위원장이었다. 그러나 장군을 보는 순간 갈등은 사라졌다. 단정하고 강건한 체구에 야릇한 기품이 서린 개였다. “품성과 품종 모두 대단히 매력적이었어요. 등록에 성공할 거라고 직감했죠.” 1년 후 장군의 고향인 진도를 방문한 멕은 한국의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애견연맹 “20년 만에 이룬 경사”

▲ 영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진돗개 브리더 멕 카펜터씨
2년 후인 2005년 5월 10일, 런던 피카딜리가(街)의 영국 케널클럽 본부에선 심각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나라가 내놓은 개에게 영국 왕실과 정부가 인정하는 순종 혈통서(pedigree)를 부여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 혈통서는 ‘식견국(食犬國)’ 코리아의 개에게 리트리버, 푸들, 셰퍼드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라이선스였다. 영국 케널클럽은 한 견종의 순수혈통을 승인하기까지 4~5대에 걸친 혈통을 면밀히 검토하는 까다로운 심의절차로 유명하다. 진돗개는 겨우 2대의 혈통만 확인됐으니 충분히 승인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명의 대의원은 결론을 내렸다. 나라는 밉지만 개는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우수했다. “한국의 진돗개를 영국 케널클럽의 197번째 견종으로 공인한다!”

멕 카펜터는 즉시 한국의 삼성 에버랜드로 전화해 3년간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음을 알렸다. 낭보는 곧바로 이건희 회장실에 보고됐다. ‘영국 케널클럽 진돗개 등록’은 진돗개 매니아인 이건희 회장이 특별히 지시한 사업이었다. 어릴 때부터 애견가로 소문난 이 회장은 1993년부터 크러프츠 쇼에 영상장비를 후원하는 등 진돗개를 영국에 보내기 전부터 치밀한 사전준비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믿기지 않는 경사는 연달아 터졌다. 두 달 뒤인 7월 6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세계애견연맹(FCI:Federation Canine International) 총회도 진돗개를 공인견종으로 승인했다. 1995년에 한국애견연맹(KCC)이 진돗개를 ‘FCI 334호 임시견종’으로 등록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FCI는 영국과 미국의 독주에 반발한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가 1911년에 설립한 애견연맹으로, 현재는 84개 나라를 회원국으로 거느린 최대 규모의 애견단체로 발전했다.

한국애견연맹은 1982년 일본에서 열린 FCI 총회에 진돗개를 처음 선보인 뒤 1994년에 FCI 위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진돗개가 하나의 고유 견종으로 인정할 가치가 크다”는 진단을 받아냈다. 그 후 순종 혈통을 확인하기 위한 10년의 유예기간 동안 꾸준히 진돗개 관련 보고서를 총회로 보냈다. 마침내 작년 5월 9일 독일인 빌헬름 브라스 과학위원장과 일본인 가미사토 표준위원장이 경기도 분당에서 열린 진돗개 전람회에 참석해 진돗개의 표준체형을 확정했고 올해 7월 6일 정식으로 등록됐다.

한국애견연맹 진도견협회의 이병억 부회장은 “20여년 만에 완성된 사업이라 감개무량하다”면서 “이제 3대 애견연맹 가운데 미국 AKC의 공인을 받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FCI와 KC가 공인한 이상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크러프츠 쇼장의 진돗개 `장군`.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국내 애견수입 연 400억원 넘어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영국이 진돗개의 우수성을 보증했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 진돗개가 세계 애견시장의 중심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깨가 으쓱한 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진돗개 수출의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매년 2만마리의 외국 애완견을 일본과 미국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수입액만 연간 400억원이 넘는다. 반대로 독일 같은 나라는 셰퍼드, 슈나우저, 로트바일러 등의 개를 수출해서 연간 2조원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이제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하지만 한국도 그와 같은 개 수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둘째, ‘식견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진돗개가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애견문화가 보편화한 유럽과 미주에서 ‘한국인은 개를 먹는다’는 이유로 종종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다. 서울올림픽 직후 영국인은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였고, 노태우 대통령의 방문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한국의 애견인은 외국의 이름난 브리더를 방문하고 싶어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했다.

셋째, 국제 도그 쇼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애견인에게 이것은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진출한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향후 3대 도그 쇼인 영국 크러프츠 쇼나 미국 웨스트민스터 도그 쇼, 호주 멜버른 도그 쇼에 진돗개가 출전하게 될 것이다. 만일 BOG(Best of Groub:각 그룹별 최고상. 진돗개는 슈나우저, 마스티프, 아키타 등과 함께 유틸리티 그룹에 속해 있다)에만 올라도 진돗개의 가격은 현재의 수백만원에서 1억원대로 뛴다. 만일 최고의 영예인 BIS를 획득하면 최하 10억원 이상의 몸값을 받을 수 있다.

유럽인은 과연 진돗개의 어떤 품성에 반했을까? 우선 그들은 진돗개의 순수혈통(pure blood)을 높이 샀다. 섬에서 오랜 세월 혈통이 보존된 채 많은 개체가 번식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유럽의 개는 거의 인공교잡으로 만들어져 진돗개처럼 자연도태를 거쳐 좋은 형질이 고정된 사례가 거의 없다. 특히 국가에서 법률로 보호육성한다는 점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체구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형견이라 정원이 딸린 서구의 가정에서 기르기에 딱 좋다. 그리고 탁월한 충성심, 한 주인만 섬기고 멀리서도 주인을 찾아가는 귀소본능에 대해 몹시 놀라워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원 맨 도그’다.

그밖에 훈련 없이도 스스로 배변을 가리는 청결성, 특유의 야성미와 강건함, 침착하고 그윽한 표정에서 풍기는 동양의 신비감에 매혹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크러프츠 쇼장에서는 영국인 100여명이 진돗개를 분양받겠다고 신청했다. 그 중에는 벌써 “이 개의 고향인 진도를 방문하고 싶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국애견연맹은 “덴마크, 핀란드, 독일 등 북유럽국가에서 특히 진돗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2005년 크러프츠 쇼의 BIS로 뽑힌 노포크 테리어 `코코`(왼쪽)
공격성 길들이는 게 국제화의 과제

그러나 진돗개가 서구인의 가정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아직 더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진돗개 속에 잠재한 야성이 문제라는 것이다. 몇몇 애견전문가는 “멧돼지와 맞서고 노루를 사냥하는 진돗개의 용맹이 가정견 시장에선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삼성 에버랜드 국제화지원팀의 장재원 차장은 “장군의 경우 에버랜드에서 상당기간 사회화 훈련을 거쳤다. 만일 진도에서 바로 영국 쇼장으로 갔더라면 낯선 사람이나 개를 공격했을 수도 있다”며 “진돗개의 성향을 프렌들리하게 만드는 것이 국제화를 앞둔 숙제”라고 말했다.

물론 긍정적인 시각도 많다. 한국애견협회 심사위원 윤희본씨는 “세계 애견시장의 최근 흐름은 내추럴리즘”이라며 “가공이 덜 된 진돗개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여지가 더 많다”고 했다. 과거에 개가 사냥과 목축의 도구일 때는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 성품이 인기를 끌었지만 동등한 가족으로 대접받는 오늘날에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과 자아의식을 가진 성품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 요즘 ‘펫 도그’(애완견)란 말보다 ‘컴패니언 도그’(반려견)란 말이 유행하는 것이나 아키타, 에스키모 도그, 시베리안 허스키 등 늑대와 흡사하게 생긴 북방견(Northern Spitsz Dog)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칠고 광활한 아시아 대륙에서 살아남은 자연의 작품인 진돗개를 보면서 유럽인은 인간의 창조물인 그들의 애완견에게서는 사라지고 없는 뭔가를 발견했을지 모른다.

진돗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위상은 ‘우물 속의 파도’였다. 재미동포들에 의해 미국에 전래된 1만마리의 진돗개는 일본 아키타나 시바견의 잡종으로 인식되고 있다. LA 유기견 센터에 있는 개 가운데 입양대상으로 가장 인기 없는 개가 핏불테리어와 진돗개라고 한다. 일본인은 진돗개를 “재퍼니즈 스피츠의 변종”이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모두가 우리나라의 애견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KC나 AKC에 등록된 각 나라별 고유견종을 보면 영국이 60여종, 프랑스가 40여종, 독일이 20여종으로 전체 견종의 70%를 차지한다. 중국도 페키니즈, 차우차우, 퍼그 등 6개 견종이, 일본은 아키타, 시바, 재퍼니즈 친, 재퍼니즈 스피츠 등 4개 견종이 등록돼 있다. 한국은 이제 겨우 한 종을 등록시켰다.

▲ 국내에는 매년 20차례 이상의 진돗개 전람회가 열리고 있다.
해외홍보 등 정책적 시스템 마련해야

출발이 늦은 만큼 진돗개를 세계적 명견으로 키우기 위한 노력도 다른 나라의 몇 곱절이 필요하다. ‘애견의 가치는 시장에서 인정받는다’고 한다. 외국인이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우리 개를 사갈 때 진돗개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애견인들은 “그를 위해 먼저 우리나라 내부의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생산자(브리더)는 전문적 소양을 갖춰야 하고 그들이 기른 진돗개가 3대 애견쇼에서 입상하는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돗개 관할부처인 농림부는 국제화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하고, 진돗개 서적을 외국어로 발간하고 저명한 학자와 심사위원을 국내 개 전람회에 초청하는 국제교류가 필요하다. 일본의 야구스타 스즈키 이치로가 시바견을 안고 사진을 찍듯이 영국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이 진돗개와 함께 포즈를 취하는 식의 홍보는 어떨까. 영국 독일 미국에 진돗개 클럽이 생겨나고 그들이 최상품을 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날아오는 날 진돗개는 비로소 세계의 명견이 될 것이다.

진돗개가 한국산이라고 해서 매출액이 모두 한국으로 귀속되는 건 아니다. 한국 브리더가 키운 진돗개보다 영국 브리더가 키운 진돗개가 애견쇼에서 더 좋은 성적을 얻으면 소비자는 결국 영국에서 진돗개를 살 것이다. 일본이 원산지이지만 미국에서 더 좋은 품종으로 개발해 시장의 주도권을 미국이 쥐게 된 아키타가 좋은 예다. “좋은 개를 가졌으면서도 유럽과 미국에 소유권을 빼앗긴 중국과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진돗개 생산 유통체제의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애견인들은 말하고 있다.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

출처 : 네티즌초록꿈사랑본부
글쓴이 : 돌구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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