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무
오늘도 집에 가다
나는 네 뿌리에 앉아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댄다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더니
들판은 푸르고
엉겅퀴꽃 망초꽃이 피었구나
좋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앉아
저 꽃 저 들을 보니 오늘은
참 좋다
이 세상을 살아오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었듯이
내 청춘도 까닭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냥 외로웠다
이유 없이 슬펐다
까닭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오늘 같은 어느날
텅 빈 네 그늘 아래 들어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댔다
아, 서늘하게 식어오던 내 청춘의 모서리에 풀꽃이
피고
눈 들어 너의 그 수많은 잎들을 나는 보았다
온몸에 바람이 불고
살아보라 살아보라 살아보라
나뭇잎들이 수없이 흔들렸다
살고 싶었다
지금도 피는 저 엉겅퀴와 망초꽃을
처음 보던 날이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집에 가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네 뿌리에 앉는다
이 세상 어느 끝으로 뻗어
이 세상 어느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네 가지 가지에 눈을 주고
이 세상 어둠속을 하얗게 뻗어
어둠의 끝에 가 닿을 것만 같은
네 뿌리에 앉아
나는 내 눈과 내 몸을 식힌다.
―김용택 시집 《강 같은 세월》에서
출처 : 떠있는 섬
글쓴이 : 사과나무 아래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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