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의 날’ 60주년 기념식이 열린 지난 6월 20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 중견 건설업체 임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화두는 자연스럽게 최근 발생한 중견건설업체 신일 부도 사건.
“신일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작년 말부터 공공연히 돌았던 터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지만 앞으로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걱정”이라는 것이 대다수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었다.
경남 소재 A건설 관계자는 “신일 부도사건 직후 국내 대표적인 기업평가 회사에서 신용평가를 받았는데,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다”면서 “지난해와 비교해서 기업 성적이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벌써 지방 건설사라고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근 지방 분양이 많은 B건설 관계자도 “건설업이 안 좋다고 하니 금융업체들의 시선이 벌써 싹 변했다”면서 “벌써 지방 사업이 많은 건설사에 대해 금리 차등 적용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답답해했다.
신일 부도가 다른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자금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13일 시공능력 순위 57위인 중견건설업체 신일의 부도 이후 건설업계에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신일은 주택공사 도급공사를 포함해 전국 30개 사업장에서 1만9000여 가구의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당장 사업장별로 수십개씩 하도급을 하고 있는 수백여 개의 업체들의 생존이 위험에 빠진 것이다. 신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지방사업이 많은 건설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은행들의 상환압력이 심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형태로 건설사에 돈을 많이 빌려준 은행들이 위험관리를 강화하면서 자금 상환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충청기반의 C건설 임원은 “신일 부도 이후 지방의 청약예정자조차도 지방 중견건설사 분양 물량을 불안하게 보기 시작했다”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 분양 물량을 제외하고는 분양도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아파트 미분양 증가가 위기 요인
익히 알려져 있듯이 신일 부도의 직접적 원인은 지방 미분양 아파트의 증가다. 신일은 최악의 미분양 지역으로 꼽히는 대구지역에서 아파트 공사를 7곳이나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 지방사업장에서의 분양률은 대부분 20%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분양률 20% 미만이면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지방 분양시장의 미분양 증가는 공급과잉에 따른 것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시도별 주택보급률’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 주택보급률은 경기도(99.4%)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110%를 넘어선다. 특히 전남(138.9%), 충남(133.8%), 강원(130.9%), 전북(129.1%), 경북(127.9%) 등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30%정도 과다 공급된 상태다.
과잉공급은 자연스럽게 미분양으로 이어진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견건설사들의 미분양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3000가구로 이 가운데 중소업체가 주로 분양했던 지방 아파트가 6만9000가구에 달한다.
미분양이 증가하면 금융비용이 늘어난다. 미분양만큼의 금융비용을 건설사가 고스란히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대부분 건설사들은 최근 분양 시장 침체를 돌파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중도금 무이자, 이자후불제 등을 실시했다. 엄청난 이자부담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또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관리비에다 최근 들어 6월 1일 기준으로 부과된 재산세 등 추가 비용으로 인해 건설사들의 금융부담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수백억으로 늘어났다. 엄청난 자금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앞서 A건설 관계자는 “최근 지방 사업장에서는 수익률이 5% 미만으로 떨어진 곳이 부지기수”라면서 “현재 많은 지방사업장이 수익률 저하가 문제가 아니라 손해를 보지 않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장 곳곳에서 부도설, 인수합병(M&A)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부도설은 지방에서 사업을 많이 하는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거론된다. 이미 부도를 내는 기업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세창이 부도났으며, 11월에는 삼익과 비콘건설이 무너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 5월 한승건설이 부도났고, 이번에 신일이 결국 어음을 막지 못했다.
시황 악화로 매물로 나오는 건설사들이 늘어나면서 M&A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시장 매물로 울트라건설(옛 유원건설), 명지건설, 온빛건설(옛 한보건설), 삼익건설 등 1군 대형 건설업체들이 언급되고 있으며 M&A가 거의 마무리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지는 부도설과 M&A설
업계는 다음 부도 후보가 어디냐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부산이나 대구, 광주 등에서 수천가구씩 분양을 했으나 계약률이 극히 저조한 4~5개 기업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지역에 분양을 많이 한 A사. 회사 측에서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자금 부족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는 게 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지방 분양시장 침체에 따른 건설사들의 이 같은 어려움이 당분간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건설사들은 최근 지방 미분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그나마 사업이 되는 수도권에서도 분양가 규제로 수익을 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는 9월 이후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반기 들어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 분양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건설사들의 내부 심사를 강화할 것이라는 계획도 나온다.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자금 대출을 제한하고, 이미 나간 자금 회수도 서두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뿐 아니라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기준이 되는 건설사들의 신용등급도 하락할 조짐이다.
한국신용정보는 지난달 ‘건설시장 동향 및 건설업체 실적 분석’이란 리포트를 통해 “외부차입 의존도가 높고 지방에서의 사업비중이 큰 건설업체의 경우 재무안정성 저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금융권에 주의를 당부했다.
D건설 마케팅 담당 임원은 “시행사들 중에 땅만 사놓고 사업진행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장도 많다”면서 “건설업체들 사업 환경이 이렇게 어려우면 2~3년 이후엔 공급 위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07/06/27 이코노믹리뷰 경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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