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기를 쓴다는 것
일기를 왜 써야 할까? 왜 아이들은 일기를 써야 할까? 왜 교사들은 일기 쓰기 지도를 해야 하나? "선생님, 도대체 왜 일기를 써야 하나요?"하고 묻는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또, "우리들에게는 일기를 매일 쓰라고 하시면서 왜 어른들은 일기를 쓰지 않는 거예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는 일기 쓰기의 의미를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다음을 생각해 보자. 강도가 일기를 쓴다. 어떻게 쓸까?
오늘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못했고 겨우 100만 원밖에 빼앗지 못했다. 아쉽다. 하마터면 경찰에게 덜미가 잡힐 뻔했다. 내일은 좀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서 두 사람을 죽이고 1000만 원은 더 빼앗아야지. 내가 누구냐? 이 판에서 10년이나 굴러먹은 베테랑이 아니냐?
아무리 흉악한 강도라도 이렇게 일기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쓸까? 적어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자기 변명이라도 늘어놓지 않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라도 대지 않겠는가? 그렇게 날마다 쓴다고 생각해 보자. 점점 흉악한 강도가 되어 갈까? 아니면 차츰 반성하고 새 삶을 살아가게 될까? 일기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진실한 기록이다. 자신의 삶과 사회에 애정을 갖고 매일 매일을 성찰하는 일기를 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더욱 건강해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기 쓰기 지도를 열심히 하는 교사도, 날마다 아이 일기를 살피는 열성 있는 학부모도 정작 자신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라고는 초등학생뿐이다. 그런 초등학생도 나중에 교사가 되고 부모가 되면 스스로 쓰지는 않고 아이들만 닦달할 것이다. 일기 쓰기 지도에 혁명이 있어야겠다. 일기 쓰기 지도가 아니라 일기 안 쓰기 지도가 된 이 때까지의 일기 지도 방법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생각을 바꾸어 보자.
2. 일기 쓰기를 방해하는 걸림돌 열 두 가지
일기는 자기가 겪은 일을 어떤 틀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이다. 그것도 바로 오늘 겪은 일을 사실대로 써 나가는 글이다. 이처럼 쉬운 글도 없다. 그런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일기 쓰기를 짐스러워한다. 초등학생은 검사만 없으면 당장 일기장을 내던져 버린다. 중·고등학생은 공부하느라 일기를 뒤로 밀어 버렸다. 대학생은 취업 준비에 바빠서 내던져 버렸고, 아버지는 회사일, 어머니는 집안일이 바빠서 일기장을 밀어 내 버렸다. 죽을 때가 되어서 생각해 보니 일기라곤 초등학교 때 지겹게 쓴 기억뿐이다. 바빠서 뒤로 밀어 놓아야 하는 게 일기라면 그건 이미 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일기를 보자. 결코 한가한 사람들이 쓴 일기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써 나간 이순신 장군의 난중 일기, 열하 지방을 여행하면서 그 문물을 우리 나라에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쓴 박지원 선생의 열하 일기, 이오덕 선생의 교육 일기……. 모두 시간이 남아 돌아가는 사람들이 쓴 일기가 아니다. 이런 일기글들이 뒷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으며 감동을 주고 있는가 일기는 삶 바로 그것이다. 곁에서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숨쉬며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글자로 옮겨 놓은 것이 일기다. 그래서 일기는 살아 있는 글이다. 초등학교에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새싹을 틔우는 듯하다가 공부 때문에, 돈벌이 때문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깡그리 싹도 없이 말라 죽어 버리고 마는 연약한 것이 일기라면 일기 쓰기 교육은 실패다. 무엇이 이렇게 연약한 새싹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했기에 그처럼 흙에 뿌리를 두지 못하고 말라 죽게 만들었는가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1) 글쓰기나 국어 공부를 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글쓰기나 국어 공부를 위해 일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그만 일기쓰기를 애물단지로 여기게 하는 첫 번째 걸림돌이다. 일기를 쓰면 글쓰는 힘이 생긴다는 말은 맞다. 일기를 쓰다 보면 글자도 익히고 어휘 활용 능력도 늘어나서 국어 공부가 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지 여기에 목표를 두어서는 일기 쓰기 자체에 굉장한 방해가 된다. 일기를 쓰는 아이들은 글자가 틀리면 어떡하지, 글자가 비뚤면 어쩌나, 띄어쓰기가 틀리면 큰일인데 같은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고 일기를 써야 한다. 어른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어디 글자를 몰라서 안 쓰는가? 문제는 일기 쓰기가 밥 먹고 똥 누는 일처럼 생활이 되도록 하는 일이지, 잘못 쓴 글자나 가르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글자를 완전하게 깨우쳐야만 비로소 일기를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알고 있는 글자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게 일기다. 말이 서툰 아기에게 말을 다 배우게 한 뒤에 비로소 말을 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2) 특별한 일을 쓰라고 하기 때문에 하루 일 가운데서 특별한 일을 골라서 쓰라고 가르치는 일기 지도가 일기를 애물단지로 만드는 두 번째 걸림돌이다. 날마다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 하루 일에서 특별한 일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기장을 펼쳐 놓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밥 먹고 학교 가서 공부하고……. 이런 일들만 떠오른다. 아이들은 특별한 일이 일어난 날이면 오히려 일기를 잘 쓰지 못한다.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그 분위기에 들뜨기 때문에 차분하게 앉아서 일기를 쓸 수가 없다. 그럴 마음도 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식구들과 여행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차분하게 글감을 골라서 자세히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줘야 한다.
(3) 길게 쓰라고 하기 때문에 길게 써라. 아무리 짧아도 한 쪽은 넘도록 써야 한다. 이게 또 일기를 못 쓰게 하고 일기를 애물단지로 여기게 하는 세 번째 걸림돌이다. 길게 써야만 잘 쓴 일기라고 할 수는 없다. 한두 줄을 써도 하고 싶은 말을 다 썼으면 된다. 길게 쓰라는 이 말이 어마어마한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게 쓰자.'가 아니고 '자세히 쓰자.'고 해야 한다.
나는 오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참 재미있었습니다.
오늘 어머니가 굉장히 웃겼습니다. 나는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나올라 그랬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다 썼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일기를 다 쓴 것이다. 이 일기를 쓰면서 재미있었던 일, 웃겼던 일도 모두 떠올리며 일기를 썼을 것이다. 너무나 우스워서 일기를 쓰면서 혼자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무지 그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재미가 있었다고 썼는데 읽는 사람은 하나도 재미가 없다. 우습지도 않다. 이것은 우스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주 우스운 장면은 미처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비식비식 웃어서 상대방을 재미없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럴 때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글로 다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남이 읽어서 궁금한 게 없도록 쓰는 공부가 필요하다. '재미있었다.'가 아니라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쓰도록 해야 한다. '우스웠다.'가 아니라 우스웠던 이야기를 그대로 자세히 쓰도록 해야 한다.
(4) 잠자기 바로 전에 쓰기 때문에 일기는 하루 일을 반성하는 글이기 때문에 하루 일을 마감하는 밤에 써야 한다는 생각이 또 일기를 못 쓰게 하는 네 번째 걸림돌이다. 밤늦게 쓰는 일기가 왜 일기를 애물단지로 만드는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보자. 저녁밥도 먹고, 숙제도 다 하고, 텔레비전도 실컷 보고 이젠 하루 일을 다 마쳤다. 이제 일기 쓰고 잠만 자면 그야말로 오늘은 끝이다. 제 방에 들어가서 일기장을 펼쳤다. 그런데 잠이 달콤하게 유혹을 한다. 이불 밑에 들어가고 싶을까, 일기를 쓰고 싶을까? 이런 일이 날마다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일기가 어찌 재미있겠는가? 이래서는 결코 일기 쓰기가 잘 될 수 없다. 잠잘 시간에 일기를 쓰게 하지 말자. 될 수 있으면 겪은 즉시 일기를 쓰도록 하되 일기 쓸 시간을 충분히 갖고 쓰도록 하자.
(5)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고 하기 때문에 하루 일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거나 새롭게 깨달았다는 말을 반드시 일기에 써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다. 이 또한 일기를 보기 싫은 애물단지로 만드는 걸림돌이다. 일기가 하루 일을 되돌아보는 데 아주 적절한 노릇을 한다는 말은 맞다. 그렇지만 방법이 틀렸다. 일기 끝에 반드시 다짐이나 반성을 쓰도록 한다면 그것이 또 하나의 틀이 되어 자유롭게 일깃감을 고르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없는 거짓글을 쓰게 만든다. 일기의 생명은 뭐니뭐니해도 정직이다. 선생님에게 억울하게 꾸중을 들었다면 선생님이 미워야지 왜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 말씀을 더욱 잘 듣겠다.'가 되어야 하는가? 그렇게 쓰는 아이는 그 일기를 씀으로 해서 억울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기는커녕 도리어 선생님이 싫어질 수밖에 없다. 억울하면 억울하다, 미우면 밉다,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쓸 때 비로소 쌓이거나 억눌린 마음이 풀린다.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게 해서는 결코 바른 삶을 가꾸어 나갈 수가 없다. 정직한 글은 마음을 병들게 하는 찌꺼기들을 풀어 낸다. 이것이 참 삶을 가꾸는 일이다.
(6) 사실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쓰라고 하기 때문에 있었던 이야기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꼭 써라, 그래야만 생각이 넓어지고 마음이 쑥쑥 자란다, 자기 생각을 쓰지 않은 일기는 좋은 일기가 못 된다. 이러한 엄포가 일기를 애물단지로 만드는 여섯 번째 걸림돌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쓰는 일기가 왜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사실을 사실로 써야지 생각으로 일기를 쓴다면 사실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일기는 겪은 일을 중심으로 쓰는 사실 기록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기록 안에 들어 있는 아이들 생각을 읽는 것이다.( 보기글 6. 참고 ) 그렇다고 일기는 사실을 적는 글이니까 생각이나 느낌을 쓰지 마라고 해서도 안 된다. 겪은 사실을 쓰든지, 생각이나 느낌을 쓰든지, 겪은 사실과 생각을 섞어 쓰든지 어느 한 쪽으로 몰고 가지 않아야 한다.
(7) 일기장에 있는 잡다한 틀 때문에 틀을 만들어 놓은 일기장은 아이들 생각을 틀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만다. 일기장 여기저기 있는 잡다한 틀이 일기를 못 쓰게 하는 일곱 번째 걸림돌이다. 가게에서 파는 '일기장'을 살펴보면 아주 괴상하고 복잡한 틀을 만들어 놓았다. 그 틀이 문제다. 아래 위로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틀이 거의 반 쪽을 차지하고 있다. 날씨도 그림에 동그라미를 하도록 해 놓았는데 '해, 갬, 구름, 비, 눈' 이렇게 다섯 가지로 못을 박아 두었다. 이래 가지고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규칙에 맞는 생활을 이끈다고 만들어 놓은 '일어난 시각과 잠잔 시각', 착한 어린이로 이끌겠다고 마련한 '오늘의 착한 일, 오늘의 반성', 계획 있는 생활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내일의 할 일' 같은 칸들이 아이들을 질리게 하고 있다. 이런 것도 모자라서 한 술 더 떠서 더 괴상한 일기장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오늘의 탐구', '오늘의 효행', '오늘의 노래', '오늘의 봉사'…….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런 틀들이 아이들을 자꾸만 일기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틀이 있는 일기장을 내버리고 보통 공책에 쓰게 하자. 이것이 일기쓰기 걸림돌을 치우는 또 하나의 길이다.
(8) 일기 검사 때문에 일기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게 맞다. 아이들 일기라고 해서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봐도 괜찮다는 법은 없다. 누군가 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쓰는 일기는 아무래도 정직하게 쓰기 어려울 것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진짜 일기장과 검사 맡는 일기장을 따로 두고 쓰겠는가. 이 문제를 그냥 두고 일기 잘 쓰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런데 아이들 일기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들 일기를 담임이나 부모가 읽을 때는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이 부딪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기를 보기 보되 안 보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교사나 학부모가 날마다 일기를 살펴보더라도 거리낌없이 일기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차돌 같은 단단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일기 내용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지 않겠다고 말로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금방 믿음을 갖는다. 그런데 아무리 차돌 같은 믿음이 있다 해도 비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이야기라도 마음놓고 쓸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뒤의 '비밀일기'부분에서 자세히 다룰 것임) 일기를 지도해야 할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일기를 읽더라도 안 읽는 효과를 내자. 그래서 일기를 남이 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자.
(9) 숙제로 쓰기 때문에 아무리 재미있는 숙제라도 숙제라고 하면 먼저 지겹다는 생각부터 든다. 또 숙제라고 하면 꼭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는다. 스스로 정한 숙제라도 이런 부담에서 아주 벗어날 수는 없다. 더욱이 일기를 숙제로 낸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숙제로 쓰는 일기, 이것 또한 일기를 즐겁게 쓰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일기에 재미를 붙게 하려면 일기 쓰기가 날마다 밥 먹고 똥 누는 일처럼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숙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끌려서 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기는 그냥 밥 먹는 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 주자. 그리고 숙제로 내지 않더라도 일기를 자꾸 지겹게 여기게 하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빨리 치워줄 일이다.
(10) 대신 써 주기 때문에 1학년 일기 쓰기 지도에서 아주 큰 걸림돌은 부모님이 대신 일기를 써 주는 일이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어떻게 커 나가는지를 느긋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성급하게 끼여든다. 뻥튀기를 해서라도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빨리 크기를 바란다. 한두 달 안에 일기 쓰기 도사를 만들어 놓고자 한다. 그게 일기 쓰기를 망치는 일인데도 말이다. 일기는 자기가 겪은 일을 쓰는 글이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그 일을 바라보는 생각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다르다. 일기를 대신 써 줄 수 없는 가장 큰 까닭이 여기에 있다. 1학년 일기 쓰기 지도에서 부모님들이 관심은 가지되 깊이 끼여들거나 대신 써 주지만 않아도 일기 쓰기 지도는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 혼자 힘으로 쓰도록 지켜 보자.
(11) 그림 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일기 지도는 그림 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그림 일기부터 시작하는 데는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것이다. 글로만 쓰는 일기는 글자를 익혀야 되지만, 그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1학년들에게 그림 일기를 쓰게 하는 가장 큰 까닭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생각이 끼여 있다. 글자를 완전히 익혀야만 그림이 아닌 글로 일기를 쓸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그것이다. 아기가 맘마, 찌찌, 까까, 응아…… 이렇게 아주 서툰 말부터 부지런히 하면서 말을 배우는 것은 인정하면서 왜 일기는 1학년이 알고 있는 글자만으로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할까. 입학한 지 대여섯 달만 지나면 글로 일기를 다 쓸 수 있다. 물론 받침이 있다든지 자주 쓰지 않는 글자는 잘 쓰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일기 쓰기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림 일기를 쓰게 해 보면 생각한 것과 달리 그림과 글자가 서로 부족하고 서투른 점을 메워 주는 노릇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그림을 날마다 그리는 것에 굉장히 부담을 갖는다. 1학년 아이들 대부분은 그림을 그렸다 하면 꼼꼼하게 색칠을 하는데, 사실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힘들어 한다. 또 그림을 그릴 곳도 문제다. 그림을 대담하게 그릴 수도 없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려 넣고 아래에 있는 글자 쓰는 칸에 그림을 설명하는 정도로 글을 쓴다. 겹치기 표현이다. 잘못하다가는 그림도 제대로 된 것이 못 되고 글도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되고 만다. 그림 일기보다는 처음부터 글로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
(12) 어른들이 일기 쓰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일기를 쓰지 않는다.' '쓰기를 싫어한다.' '큰일이다.'고 걱정을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교사나 학부모들 자신은 얼마나 일기를 부지런히 쓰고 있을까? 만약 쓰고 있지 않다면 어른들의 이런 모습을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른들이 스스로 일기를 쓰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일기를 쓰라고 하는 태도가 일기를 애물단지로 여기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 가장 큰 걸림돌을 마지막에 놓은 까닭은 어른들도 일기 쓰기 지도를 잘못 받은 피해자라고 생각해서다. 자기는 일기를 쓰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는 그 잘못 받은 방법으로 일기를 강요하고, 또 그 아이가 자라서 그렇게 되풀이하는, 이런 악순환의 한가운데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서 있다고 생각해서다. 교육은 말로 되지 않는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이 몸으로 보여 주는 것만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몸으로 보여 줄 때 거기에는 감동이 있다. 감동이 있어야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일기를 잘 쓰기를 바란다면, 우리 아이가 일기를 잘 쓰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지도하는 어른이 일기장 공책을 한 권 사서 당장 오늘부터 일기를 쓸 일이다.
3. 일기 - 무엇을 어떻게 쓰게 할까
(1) 날씨 쓰기 많은 사람들은 일기에 '맑음, 흐림, 갬, 비, 눈' 이렇게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날 날씨를 적는다. 그런데 하루의 날씨를 그처럼 간단한 낱말 하나로 나타낼 수 있을까. 날씨를 문장으로 쓰게 해야 한다. 아침부터 일기 쓸 때까지 일기 변화를 간단하게라도 문장으로 나타내게 하면 아이들은 아주 재미있어하며 쓴다. 일단 날씨를 다섯 가지로 나타내지 않고 문장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가끔씩 낱말로 적어도 된다. 변화가 없었던 날씨는 그렇게 쓸 수도 있다. 계속해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 날씨를 자세히 쓰게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자세히 살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준다. 일기를 쓰기 위해서 하루 날씨를 잘 살피는 이런 일이 무엇이든 자세하게 살피고 생각하는 태도를 길러 준다. 일기글은 한 가지 일을 골라 쓰지만 날씨는 하루 날씨를 자세히 쓰도록 해야 한다.
(2) 일깃감 고르기
일깃감 고르기의 어려움 쓸 거리를 고르기만 하면 일기를 반은 쓴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쓸 거리 잡는 일이 무엇보다 먼저고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깃감 고르는 잣대 세 가지 첫 번째 잣대
학교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부모님께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일깃감이다. 집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동무들에게나 선생님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안성맞춤이다. "어머니, 오늘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어요. 첫째 시간에는 국어 공부를 했고, 둘째 시간에는 수학, 셋째 시간에는 사회, 네 시간을 마치고는 점심을 먹었어요. 그리고 청소를 하고 집에 왔어요."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 주는 아이가 있을까? 만약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머니는 당장 아이를 걱정스럽게 쳐다볼 것이다. 멀쩡하던 우리 아이가 이상하게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일기라고 쓴다. 이런 아이에게 재미있게 쓰라거나 특별한 일을 쓰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앞에 든 첫 번째 잣대에 대보라고 하면 일깃거리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차린다. 이렇게 간단하다. 조금 더 성의 있는 학부모라면 아이가 학교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잘 듣고 있다가 "그런 일이 있었어? 그걸 쓰면 좋은 일기가 되겠네." 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 한 마디가 훌륭한 일기 쓰기 지도다. 담임 교사도 마찬가지다. 누가 잘못했다고 일러바치거나, 싸움질을 한 뒤에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목청 높여서 주장을 할 때 이렇게 해 보자. "야, 자세히 일기로 써 봐라. 그냥 말로 들어서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말 한 마디가 일깃감 고르는 눈을 크게 키워 준다.
두 번째 잣대
실수한 일, 창피스런 일, 부끄러운 일, 잘못한 일, 비밀스런 일 따위를 일기에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겠지만 자기 일기를 누군가 보고 이런저런 간섭을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잣대를 쓰기에 앞서 꼭 조건이 하나 있다. 일기를 지도하는 사람과 아이 사이에 깊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 눈으로 보면 칭찬 받을 일보다는 그저 걱정스런 일을 더 많이 하면서 자란다. 잘한 일이나 칭찬 받을 일만 스는 것이 일기라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일기 쓸 거리는 반이 아니라 아주 없어져 버린다고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이 아니다. '드러내어 자랑하고 싶지 않은 일'을 글감 고르는 잣대로 쓴다면 쓸 거리가 어머어마하게 많아진다.
세 번째 잣대
억울하고 답답하고 속상한 일을 겪으면 누구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고 욕이라도 실컷 하고 싶어진다. 이런 점에서 세 번째 잣대는 첫 번째 잣대인 '누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입을 꼭 다물고 혼자 속으로 새기고 싶은 일도 많다. 그렇다고 꼭꼭 숨기고 싶은 일은 또 아니다. 세 번째 잣대는 이런 점에서 첫 번째 잣대와 다르다. 정당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해서 아이들을 억울하게 한 사람은 주로 가까이 있는 부모님과 담임 같은 어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말로도 글로도 쉽사리 제 심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한다. 혹시나 또 야단을 맞을까 봐. 억울한 일이 있으면 억울하다고 일기를 써야 한다. 억울한 이야기를 쓰면 당연히 비난도 하고 비판도 하게 된다. 이런 일기가 나오면 일단은 우리 아이가 당당하고 바르게 자라는구나 하고 반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가 쏟아 낸 비난이나 비판이 설령 이치에 맞지 않고 지나치더라도 말이다.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깨우쳐 주는 일은 나중 일이다. 억울하고 화가 났어도 그 일을 일기로 쓰고 나서는 속이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어머니와 교사에게 맺힌 마음을 일기에라도 쓸 수가 없다면 어디에 가서 푼다는 말인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억울한 마음을 가슴에 맺히게 하고 쌓이게 해서는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일기장을 펼쳐 놓고 무엇을 쓸 지 몰라 애를 먹을 때 언제라도 위에 든 잣대 세 개에 대 보도록 한다면 아이들은 자기 삶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일깃감 세 개 골라 견주어 보기 좋은 일깃감을 고르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글감 한 개를 골라서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세 개를 찾아서 그 가운데 하나를 정해 쓰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잣대에 대 보고 일깃감을 고르라고 해도 얼렁뚱땅 아무거나 골라서 써 버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그 차례는 이와 같다. 먼저 일기장을 펼쳐 두고 쓰고 싶은 것을 고른다. 이거다 싶은 것이 있으면 오늘 쓸 일기장 제목 쓰는 곳에 써 둔다. 그 다음 두 가지를 다 골라 차례대로 쓴다. 세 가지를 다 골랐으면 찬찬히 그 일을 떠올리며 견주어 본다. 그 가운데 가장 쓰고 싶은 것을 골라 괄호로 표시를 하고 써내려 간다. 나머지 두 가지 일깃감은 지우지 말고 그대로 놔 두도록 한다. 일깃감 세 개 가운데서 하나를 고르다 보면 서로 대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것을 고르고 어느 것을 버릴지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일기 쓰기에 크게 도움을 준다.
아이든 어른이든 일깃감을 잘 골라 쓸 줄 모르면 일기 쓰기는 그야말로 애물단지요, 당장 벗어 던지고 싶은 무거운 짐이다. 그러니 특별한 일을 쓰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글감 고르는 공부부터 자세히 그리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3) 본문 쓰기 날씨를 자세히 쓰고 일깃감을 골랐으면 이제는 본문을 쓸 차례다. 일기는 길게 쓰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써야 한다고 앞에서 밝혔다. 여기서는 자세히 쓰기를 중심에 놓고 살펴보기로 하자. 또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말 바로 쓰기다. 초등학교 저학년 일기글에도 자기들도 이해하지 못할성싶은 어려운 한자말이 마구 튀어나온다. 뿐만 아니라 '키' '박스' '오! 마이 갓' 따위 서양말도 뒤섞여 나온다. 이 말살이 글살이 지도는 일기 쓰기를 위해서만 할 것이 아니라 쉼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겪어 보고 자세히 쓰기 일기는 겨우 몇 시간 전에 일어난 일을 다시 살려 쓰는 글인데 마치 까마득히 먼 옛날 이야기라서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건성건성 쓰는 수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대충 쓰는 것은 진짜로 잊어 버려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기억해 내려고 애를 쓰지 않아서 그렇다. 일기를 쓸 대 다시 한 번 떠올려 쓰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버릇이다. 떠올려 보지 않는 버릇이 굳어져 버리면 그만 떠올리기가 귀찮아진다. 버릇이란 아주 무서운 것이어서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면 나중에는 작은 일은 아예 떠올릴 수도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찬찬히 떠올려 끄집어 내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일은 그런 대로 쓰지만, 그런 일이 없을 때는 대체로 글감도 못 찾고 써도 밋밋하게 쓰게 된다. 지나간 일을 조용히 떠올려 다시 한 번 겪어 보는 일이 이래서 중요하다. 시장에 간 이야기를 쓰기로 했으면 일기장을 앞에 두고 눈을 감고 시장에 다시 간다. 동무와 싸운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면 그 동무와 다시 싸워 보아야 한다.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도 하고 욕도 해 보고 해야 한다. 그 때 분위기나 동무 얼굴 표정까지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지 대충 생각해서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 운동화를 샀다. 떡볶이를 사 먹었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겪어 보기를 한 뒤에 일기를 쓰다가도 잘 떠오르지 않으면, 짧게짧게 겪어 보기를 다시 하고 쓰면 더욱 생생한 일기를 쓸 수가 있다. 겪어 보기는 완전히 버릇이 되도록 해야 한다. 처음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해서 귀찮아하지만 몇 번만 겪어 보기를 해 보면 이 방법과 친해진다. 재미있는 일이나 즐거웠던 일은 한 번 더 즐거움을 맛보게 되니까 더욱 그렇다.
궁금한 것 묻고 답하기
아이들끼리 궁금한 것 묻고 답하는 놀이 한 아이가 일어나서 '나는 어제 어머니에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나는 어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습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면 앉아 있는 아이들이 손을 들어 그 아이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답하는 놀이다. 자세히 쓰기를 익히는 데 굉장히 효과가 있는 놀이다.
아이 : 나는 어제 어머니에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질문 : 왜 맞았나요? 아이 : 집에 너무 늦게 왔다고 맞았습니다. 질문 : 몇 시에 들어갔는데요? 아이 : 캄캄할 때 들어갔어요. 7시는 넘었을 거예요. 질문 : 무엇으로 맞았나요? 아이 : 손바닥으로도 맞고 책으로도 맞았어요. 질문 : 어디를 맞았나요? 아이 : 등허리를 맞고 어깨도 맞았어요. 질문 : 울었나요? 아이 : 조금 울었어요.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묻고 답을 하면서 아이들은 계속 깔깔거린다. 이것은 스무고개 같아서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일은 반드시 아이가 어제 한 일을 두고 이야기해야지 겪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해서는 안된다. 놀이가 끝나면 말이든 글이든 남을 궁금하게 하지 말고 자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일기 쓰기에 빗대어 일깨워 주어야 한다.
지도하는 사람이 아이들을 궁금하게 하는 놀이 공부 시작하기 앞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다가 서둘러 끝을 맺어 버리면 아이들은 궁금해서 못 견딘다. 예를 들면, "어제 집에 가는데 굉장히 우스운 일이 있었어. 얼마나 우스운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단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그리고는 모두들 자세를 바로 하고 교사를 빤히 쳐다본다. 다음에 이어질 우스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이럴 때 이야기를 거기에서 끝내고 딴전을 피우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버린다. 그러면 바로 반응이 온다. 눈을 둥그렇게 해서는 왜 이야기를 하다 마느냐고 난리가 난다. 그러면 도리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할 말 다 했는데 왜 야단이냐고 시치미를 떼면 아이들은 더 안달이 난다. 아주 적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렇지. 내가 아무리 우스워 죽을 뻔했다고 해도 너희들은 도무지 우습지 않지?" 이런 얘기를 꺼내면서, 말이나 글은 다른 사람이 누구나 알 수 있게 자세히 나타내야 한다고 일러 준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자세하게 쓰지 못한 일기 끝에 질문을 써서 답하게 한다. 일기를 읽고 도움말을 쓸 때 아이가 미처 쓰지 않은 궁금한 대목을 물어서 답하게 한다. 예를 들면 '누나와 왜 싸웠는데?' '어머니가 어떤 우스운 이야기를 하던?' 하고 물어서 아이가 그 질문에 답하게 한다. 답을 하라고 하지 않아도 이렇게 써 놓으면 아이들은 반드시 그 밑에 '장난감 때문에 싸웠어요.' '도둑놈 이야기가 우스웠어요.' 라고 써 놓는다. 이 답이 자세하지 못해서 더 묻고 싶어도 도움말로 하는 질문은 여기에서 끝낼 수밖에 없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따로 시간을 내서 아이와 단 둘이 말로 주고 받는 것이 좋다.
돋보기 가지고 다니며 쓰기 일기를 쓰다 보면 생활 둘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이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배게 된다. 일어나는 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관심 있게 살펴본다. 사람이 이 세상을 어떤 생각과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모두 그 사람 버릇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버릇이란 자기 생각이나 모습을 되풀이하면서 굳어지고, 그 버릇이 또한 생각이나 생활을 이끌어 간다. 교육도 따지고 보면 올바른 버릇을 갖게 해 주려고 하는 가르침일 터이다. 무엇이든 예사로 지나치지 않고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 늘 돋보기를 갖고 다니게 하면 어떨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물고물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를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가방을 열어 돋보기를 꺼낸다. 쪼그리고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없이 돋보기를 이리저리 들이대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일기장을 펼쳐 놓고 그 이야기를 쓴다. 대충 한두 글자 끼적거리다가 말겠는가? 일기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이렇듯 모엇을 자세히 살펴보는 버릇을 길러 준다는 것은 훌륭한 교육이라고 본다.
때와 장소 자세히 쓰기 많은 아이들이 일기글 첫머리를 '나는 오늘'로 시작한다. 그런데 왜 교사나 부모들이 '나는 오늘'이라는 말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물론 일기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글이니까 '나는'이 필요 없는 말이다. 또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 것이니까 '오늘' 또한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이나 '오늘'을 못 쓰게 하려고 지나치게 애를 쓸 필요가 없다. '나는 오늘'이란 말은 가만히 두어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고학년이 되면 쓰라고 해도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이 아니고 '오늘'이다. 때를 나타내는데 '오늘'이라고 뭉뚱그려서 나타내도록 해서는 안 된다. 때를 또렷하게 밝혀 쓰는 법을 가르쳐 주면 '오늘'은 차차 없어진다. 오늘 가운데서도 아침, 점심, 저녁, 밤 정도로 나누어 밝히든가, 하루 세 끼 끼니를 중심으로 앞뒤를 밝혀 쓰도록 하면 된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같으면 몇째 시간 혹은 몇 시간 마치고 따위로 때를 밝혀 쓰면 된다. 때를 이렇게 밝혀 쓰도록 하면 막연하게 '오늘'이라고는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을 써도 괜찮다. 버릇처럼 '나는 오늘'을 쓰고 난 뒤에라도 때를 정확히 밝혀 쓰기만 하면 된다. 억지로 고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없어지고 말 테니까. 때를 정확히 밝혀 쓰는 공부와 함께 할 것이 장소를 쓰는 일이다. 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를 잘 밝혀 쓰지 않는다. 일기를 시작할 때에는 버릇처럼 날씨를 자세히 쓰게 하듯이 때와 장소도 자세히 밝혀 쓰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자세히라는 말은 '집에서'라고 쓸 것이 아니라 '마당인지, 안방인지, 마루인지'를 밝히고, '골목에서'가 아니라 '우리 집 옆 골목인지, 슈퍼가 있는 골목인지'를 밝히고, '학교에서'가 아니라 '운동장 어디에서, 교실 어디에서' 있었던 일인지 또렷이 쓰라는 뜻이다.
주고받은 말 쓰기 무슨 글이든 주고 받은 말이 많이 들어가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이 된다. 서로 주고받은 말을 잘 살려 쓰면 그 때 심리, 태도, 모습 따위를 환하게 알 수 있다. 큰따옴표 안에 넣어서 직접 화법으로 나타내는 방법은 차차 익히더라도 주고받은 말은 살펴 쓰도록 권하는 게 좋다. 물론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옮긴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듣는 것처럼 생생할 수는 없다. 이것이 말과 글이 다른 점이다. 예를 들어 "엄마 엄마, 주무세요?"라는 글이 일기에 써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글로만 봐서는 말하는 사람이 큰 소리로 말을 했는지 속삭이듯이 말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상냥하게 말했는지 짜증스럽게 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말 앞에 '성질을 내며' '작은 목소리로' '큰 소리로'와 같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까지 알 수 있도록 쓰면 보다 생생해진다. 주고받은 말은 이렇게 써야 한다. 물론 이것도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지도는 꼭 필요하다.
그림 섞어서 쓰기 일기는 글자를 표현 수단으로 한다. 그래서 그림 일기를 쓰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앞에서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을 섞어서 일기를 쓴다는 말은 그림 일기와 다르다. 아이들 일기를 보면 가끔씩 그림을 글자 대신 사이사이에 끼워 넣기도 한다. 재미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렇지만 글로 충분히 나타낼 수가 있는데 간단한 그림으로 대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그림 그리듯이 쓰기 아이들은 그림 그리듯이 글을 쓰라고 하지 않아도 가끔 그림 같은 사생글을 쓰기도 한다. 이는 자세히 쓰기 공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돋보기를 갖고 다니면서 자세히 살펴서 쓰는 공부가 이런 성과를 거두게 했다고 본다.
우리말 바로 쓰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도 미국말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일본말을 써야 할 때가 있고 중국 한자말을 써야 할 때가 따로 있다. 또 서로 다른 나랏말이나 글을 배울 수도 있다. 그건 그런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그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나라 사람이 우리 땅에서 우리 나라 사람과 말을 하면서도 한자말이나, 서양말이나, 일본말을 마구 섞어 쓴다면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간 사람일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 생활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기글에서 고쳐 나가야 하고, 일기글에 앞서 교실에서 말살이 글살이를 고쳐 나가야 한다.
(4) 쓴 글 읽어 보기 일기를 다 쓴 다음 연필을 놓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자기가 쓴 글을 한 번 읽어 보는 일이다. 자기가 쓴 일기를 다시 읽어 보는 일은 틀린 곳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원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읽다가 너무나 엉뚱하게 잘못 쓴 곳이 있으면 바로잡을 수 있게 지도할 수도 있다. (교정기호 등을 이용할 수 있음)
(5) 일기 쓰는 시간 언제 일기를 쓰게 하면 좋을까? 가장 좋은 때는 어떤 일을 겪은 바로 뒤에 쓰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쓰는 일기를 눈여겨보면 저녁 시간에 일어난 일을 많이 쓴다. 이것은 하루 일 가운데 시간이 많이 지난 일보다는 바로 앞에 겪은 일을 많이 떠올려 쓰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바로 앞에 벌어진 일을 그때 그때 쓰기란 쉽지가 않다. 또 바로 전 일을 쓰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일기를 쓸 충분한 시간을 갖고 쓰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가장 좋은 시간은 학교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바로 다음이다. 숙제를 먼저 하든지 숙제를 하기 전이든지 그 시간이 좋다. 하여튼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쓰게 해서는 안 된다. 일기를 자세히 쓰려면 시간이 넉넉해야 한다. 글 쓰는 시간을 버릇처럼 적어 놓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일기장을 펼친 다음에는 늘 시계를 보게 하자. 그래서 공책 가장자리 빈 곳에 쓰기 시작한 시간을 연필로 희미하게 적어 두고, 일기를 다 썼으면 다시 시계를 보고 '3시 20분→4시 10분'처럼 늘 쓰도록 지도하자. (6) 일기장 봐 주기
첫째 시간 전에 다 읽는다 일기는 첫째 시간 전에 다 읽으면 좋다. 그렇지만 한 반에 40명쯤 되면 그게 쉽지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교에 일찍 가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오는 대로 다 읽을 수 있다.
새 일기장과 다 쓴 일기장 관리 날마다 일기를 보면서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그건 아이들이 다 쓴 일기장을 학년 말까지 보관하는 일과 아이에게 알맞은 새 일기장을 내 주는 일이다. 어떤 일기장이 좋을까? 일정한 규격이 없다. 아이들 글자 크기에 대 보고 쓰기에 편하면 그것이 적당한 일기장이다. 보통 1학년은 8칸짜리 칸 공책이 적당하다. 글씨를 좀 작은 크기로 쓰는 1학년 아이 같으면 10칸 짜리도 괜찮다. 처음에는 보조 줄이 그어져 있는 8칸짜리 쓰기 공책이 좋다. 중학년은 줄 간격이 넓은 줄 공책, 고학년은 줄 간격이 좁은 보통 공책이 알맞다. 그림도 그려 넣고 신문이나 잡지에 나오는 기사를 오려 붙이고 하려면 줄이 너무 진하지 않은 게 좋다. 다 쓴 일기장은 교사가 보관을 하고 새 일기장 가운데 아이 글씨 크기에 알맞은 일기장을 내 준다. 일기장 4권을 다 쓴 아이에게 새 일기장을 줄 때 공책 앞에 '일기장 5'라고 쓰고 '일기장 5 축하합니다.' 하고 써 주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아이들은 일기장 숫자가 올라가는 것이 마치 일기 실력이 쌓여 가는 것으로 느껴 좋아한다.
도움말 써 주기 일기를 읽었으면 도움말을 해 주는 게 옳다. 다음과 같은 원칙을 생각하면서 도움말을 써 주면 좋겠다.
꼬치꼬치 지도하려고 하지 말고 일기 내용에 관심을 보이며 마주 이야기하듯이 쓰자. 일기 내용을 두고 핀잔을 주거나 나무라지 말자. 그릇된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설교도 하지 말고 칭찬도 하지 말자. 딴청을 부려라. '잘 썼다.' '착하다.' 같이 기준없는 칭찬은 하지 말자. 걱정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쓴다. 빨간색은 쓰지 않는다. 가끔 우스갯소리도 써 준다.
비밀 일기 아이들 일기는 보고도 안 본 것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실수한 일, 부끄러운 일, 창피한 일 따위를 쓴다. 경험으로 보아, 누구에게라도 절대 보이기 싫은 일기는 접어 두는 방법이 가장 좋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접어서 내는 일기는 펼쳐보지 않기로 약속을 해 두고 꼭 지켜야 한다. 그런데 접어 두었던 일기도 시간이 지나면 그 장을 살짝 펴놓는 수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밀이던 것이 별 것 아닌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혹시 보지 않을까 정 걱정이 되면 아무도 못 보게 풀로 붙이게 하더라도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7) 일기 발표 아이든 어른이든 자기가 쓴 글은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기는 발표하려고 쓴 글은 아니지만 크게 비밀이 아니라면 발표하는 일은 칭찬하고 격려하는 뜻에서 괜찮다. 발표는 어떻게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교실에서 읽어 주거나 복사해서 함께 읽는 방법이다. 학급 문집을 만들어 함께 돌려 읽을 수도 있다. 글은 어떤 이야기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발표는 그렇지 않다. 글 쓴 아이가 발표를 원하지 않거나 부모가 발표를 꺼리면 발표할 수가 없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발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대목이 있어도 발표하기 쉽지 않다. 글의 발표는 항상 조심스러운 일이다.
읽거나 복사해서 발표하기 발표하는 뜻을 분명히 가지고 읽어 주어야 한다. 그냥 잘 쓴 글을 읽어 주면서 막연하게 칭찬하기 보다는 '일깃감 공부' '자세히 쓰기 공부'처럼 읽어 줄 목적에 맞추어 거기에 합당한 글을 골라서 읽어 주도록 한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자세하게 공부하고 싶은 일기는 복사해서 나누어 읽는 게 좋다.
학급 문집으로 발표하기 교사의 힘이 많이 들고 돈이 들기도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문집에 싣는 일기는 여러 가지 잣대에 비추어서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을 가려서 발표해야 한다. 교사는 평소 일기글을 읽으면서 잘 된 일기에는 별표(☆)를 해 준다. 글은 아이들이 먼저 고르는데 아이들은 별표 받은 일기 가운데 하나를 가려 뽑는다. 아이가 가려 뽑은 일기는 발표를 해도 문제가 없는가를 교사가 먼저 판단한다. 조금 망설여지는 글은 학부모에게 판단한 기회를 주기도 하고 글의 성걱에 따라 다른 방법을 찾아본 뒤에 싣도록 한다. 해결책이 나지 않는 글은 싣지 않는다.
(8) 일기장 묶어 주기 일 년 동안 쓴 일기장은 잃어버려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다. 자기가 일 년 동안 자란 모습을 담은 역사책이다. 아주 소중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교사가 보관하고 있던 일기장 모두를 꺼내서 같은 자리에 구멍을 뚫고 철끈으로 묶어 둔다. 아이들은 그 일기장을 보관할 통을 준비한다. 통은 일기 쓴 일기장 수에 따라 다르지만 한 사람이 1∼4개는 준비해야 한다. 일 년 동안 적게는 10권에서 많게는 40권까지 쓴다. 10권 단위로 묶는다. 일기를 보관할 상자 꾸미기는 미술 시간에 함께 만든다. 이 보물 상자는 영원히 보관하는 것이니까 이사를 갈 때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더라도 잊어 버리지 말고 갖고 다니라고 당부를 해 둔다. 일기장이 소중하구나, 한 번 쓰고 내버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음 학년에 올라가서도 계속 쓸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 이상 윤태규,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보리, 1998)에서 부분 발췌, 요약하였음.
◈ 사실만 써도 글 속에 글쓴이 마음이나 생각이 아주 잘 숨어 있음을 알수 있는 글 - 보기글 6.
1996년 9월 6일 금요일. 비. 반장, 부반장 뽑기 이지선
오늘 반장과 부반장 뽑기를 했다. 나도 나갔다. "복도에서 뛰지 않고 공부도 잘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전유리나와 진호 다른 사람도 다 안 됐다. 우리는 다시 선거를 했다. 이번에는 진호와 유리나와 내가 나갔다. 진호는 15점이고 유리나는 11점이고 나는 5점이었다. 이제 진호가 반장이다. 나는 내가 뽑히지 않았는데 진호가 반장이다. 여자 부반장에 나도 나왔다. 나는 말을 했다.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겠다고 했다. 또 나는 안 뽑혔다. 여자 부반장은 또 현아다.
출처 : 한국독서지도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