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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사진

1900년 이후의 미술사 (21) 1930년a 바이마르 독일에 등장한 사진의 새로운 구조와 여성 사진가

by 풍뢰(류재열) 2020. 6. 9.

▲ 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서 등장한 대중 소비자와 패션 잡지가 사진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 새로운 구조를 만들면서 여성 사진가들의 등장을 돕는다.


23~30년대 유럽과 미국의 주요 사진가들 중 상당수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예술에 있어 탁월한 손 기술만이 유일한 기준으로 여겨지던 가부장적 통례를 바꾼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이미지 제작 장치로 언급된다.

이미지를 기술-과학적으로 재조합한 사진은 예술적 정체성의 근저에 놓인 '남성적 숭고함'에 관한 생각들이 재형성되는 과정과 관계가 깊다.

게르마인네 크룰 「이카레트를 든 자화상」
1925, 로테 야코비 「자화상, 베를린」 1930


20년대 사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명의 주인공의 자화상 사진을 비교해 보면, 바이마르 여성들의 사진의 특징과 거기에 구현된 긴장감이 보다 분명해진다.

게르마인네 크룰(Germaine Krull, 1897~1985)의 1925년 작 「이카레트를 든 자화상」은 근대성의 이미지가 복잡하게 얽힌 사진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자기 반영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손으로 표현된 환유적 전경과 신체 사이의 파편화다. 두 번째로 사진가의 눈과 광학 장치(카메라의 뷰파인더)가 겹치면서 서로 그 모습을 잃고 기계 형상으로 공생 관계를 이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담배와 기계의 조화는 해방된 신여성의 독립성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보편적 상징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1930년경 제작된 로테 야코비(Lotte Jacobi, 1896~1990)의 자화상은 극적이고 회화적인 명암 대비를 보여 주고 있어 인물 사진에 대한 훨씬 전통적인 개념을 드러낸다. 카메라를 마주보면서 내면을 탐구하는 그녀는 수세기 동안 인물의 재현을 담당해 온 초상화라는 장르에 대한 가능성과 신빙성을 갈구함과 동시에 그것을 의심한다.

비록 갈등을 겪는 절망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야코비의 사진에서 주인공은 카메라라기보다 예술적 주체이다. 그러나 주체와 기계 사이의 위계적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야코비의 노력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카메라의 눈과 더 나아가 마치 탯줄처럼 기계와 작가를 연결하며 화려하게 빛나는 리모컨 선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는다.


사진가로서의 '신여성'

여성 사진가의 증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은 전문학교와 교육기관의 역사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20세기 초까지도 사진을 배우려면 전문 사진가의 스튜디오에서 견습생으로 일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적인 미술 아카데미가 여전히 여학생들을 제외하고 있던 시대에 독일에서는 두 학교에서 여성에게 사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사진은 독일 대부분의 예술 기술학교에 새로운 매체로 소개됐으며, 광고와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더불어 새로운 일자리 기회들이 여성들에게 주어졌다. '신여성'이라는 사회적 모델은 단지 여성들에게 어떤 해방된 경험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욕망을 산업화하는 총체적인 과정 속에서 그들을 생산자와 소비자로 그리고 그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진이 주도하는 대중문화는 이런 새로운 행동 양태와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또 여기에 여성들이 반응하게 만들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잡지 문화가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등장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연달아 나왔으며 이런 사진 잡지들은 새로운 스펙터클과 소비사회의 초기 형태를 구축하거나,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근로자의 필요성과 그 공론장에 걸맞게 영역을 변화시킴으로써 부르주아의 공적인 이미지 세계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링글 + 리트(엘렌 아우어바흐와 그레테 슈테른) 「신부의 파편」 1930


바우하우스 학생이었던 링글 + 리트(Ringl + Pit)의 사진은 바이마르 광고사진에서 이례적인 의미를 갖는다. 「신부의 파편」이나 「폴스키 모노폴」 같은 작품에서 이들은 광고사진의 기능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최고로 역설적인 '자기 반영성'을 내보였다. 이 두 이미지는 광고로서 사진이 지니는 두가지 중요한 기능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이 이미지들은 과시적인 재현이 필요한 지시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예를 들면 세부를 극히 정밀하게 묘사하고, 빛과 그림자의 유희를 극적으로 표현했으며, 상품 표면에 투명하고 반짝이도록 과장하고 있다.) 둘째로, 극도로 파편화된 공간적인 고립된 대상을 한순간 멈추게 함으로써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물신적인 상품으로 만든다.

이미지 생산에 있어 유럽의 여성 사진가들이 전쟁 이전에 발전시켰던 또 다른 유형은 여행 사진이었다. 그러나 여행 르포르타주라는 장르가 중요해진 것은 1933년 이후, 곧 이는 전후 기간 동안 지속된 수많은 망명 생활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여행 사진의 본질을 발견하고 뒷받침하려는 시도에는 인류학과 민속지학에서 이 새로운 매체를 아마추어적으로 사용한 것부터, 단체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현상이나 급격하게 변하는 역사,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서 인류의 발전을 알리려는 정치적 의도까지도 포함돼 있다.


망명 생활을 다룬 사진들

야코비는 배우들을 찍은 당시의 수많은 사진 속 '스타'들을 패션디자인, 분장, 조명, 그리고 대중에 대한 반복적인 노출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성립되는 현대의 스펙터클한 주제로 보았다.

이는 계급 특권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구별되고, 개인의 정신적 존재의 불가피한 영향력을 전제로 하는 독특한 주관성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의 정반대에 위치한 것이었다. 이제 사진은 새롭게 만들어진 주체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데 유일하게 적합한 매체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야코비와 프로인트는 빈에서 그들의 위대한 동료가 되었던 리젯 모델(Lisette Model)처럼 바이마르 문화와 망명 생활의 과도기 속에서 정지된 채 뿌리 없이 떠도는 모습으로 주체를 표현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공산당 학생 조직의 일원이었던 프로인트는 카를 만하임,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논문을 쓰기 시작했으며 1933년 파리로 강제 이주당한 후인 1936년에 마침내 소르본 대학에서 논문을 완성했다. 1937년 그녀의 논문은 「19세기 프랑스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 사진에 관한 첫 번째 사회적 역사서가 됐다.

한편 연극, 패션, 영화적인 특징과 함께 근대성을 표현하면서 20년대 야코비 사진의 상징이었던 강렬한 명암 대비는 1935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에는 멜랑콜리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게 된다. 그녀의 초상 사진들은 역사적 순간의 위태로움과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경험을 담고 있다.

야코비의 멜랑콜리한 명암 대비가 인간의 심오한 측면을 이끌어 내는 사이 프로인트는 1938년 이후 컬러 사진을 사용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초상 사진을 제작했는데(이를테면 제임스 조이스와 양차 세계대전 사이 프랑스 지성인과 예술인사들처럼) 이는 불가피하게 구경거리로 전락해 가는 주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프로인트의 컬러 사진은 본의 아니게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 총천연색 영화들은 물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나 <라이프>지의 컬러로 가득 찬 광고들과 뒤얽혔다. 이 잡지들의 색채가 보여주는 '자연주의'는 소비문화로 인해 곧 생명력을 상실하게 될 사물에 대한 친밀함, 존재성, 그리고 생명력을 그저 흉내 내고 있었다.

바이마르 사진가들이 프랑스로, 미국으로, 혹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후의 발전 방향을 추적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언어와 문화는 물론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맥락마저 빼앗긴 채 그들은 이제 사진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면에서 완전히 이질적인 정의에 직면하게 됐다.

그 배경에는 '무기로서의 사진'이 철저하게 신뢰를 잃고 검열당해 왔던 미국에서 소비문화를 빠르게 가속화시킨, 노골적이고 집중화된 상업주의와,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 일반에서, 또 시각문화의 지배자로서 가부장적 우월성을 띠는 회화(추상표현주의)의 복귀가 있었다.

회화에 맞서 바이마르 문화의 개혁적 전방위에 섰던 사진은 이제 한 발짝 비켜서서 소수의 '자매 예술'이라는 초기의 역할로 격하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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